시기 선택만 남은 美의 이라크 공격 : '아프간式 대리戰'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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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이제 기정사실이다. 남은 문제는 언제,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장관은 얼마 전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개봉 박두한 '걸프전 Ⅱ'는 전편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11년 전에 비해 전쟁 기술은 엄청나게 발달했다. '걸프전 Ⅰ'은 마지막에 사담 후세인이 빠져나가는 것으로 끝났지만 이번엔 그 '인간쓰레기'를 잡고 말겠다. 제작비 약 8백50억달러를 아낌없이 쓸 것이다."

9·11테러 발생 6개월 되던 지난 11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 2단계 돌입을 선언했다. 부시는 이틀 후 기자회견에서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문제'며 "그를 손봐주겠다"고 다짐했다. 딕 체니 부통령은 현재 중동 11개국을 순방 중이다. 여행 목적은 이라크 공격에 대한 아랍국가들과 터키·이스라엘의 지지를 얻는 것이다.

1991년 걸프전은 쿠웨이트 해방이 목표였다.이라크 침략군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내면서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이번엔 후세인을 권좌에서 몰아내는 '정권 교체'가 목표다. 엄밀히 말해 이라크는 테러와의 전쟁 대상이 아니다. 이라크는 9·11 테러와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미국은 대량 살상무기 문제를 들고 나왔다. 테러와의 전쟁 분위기를 이용해 오랜 숙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경우처럼 반(反)테러동맹 구축을 바란다. 하지만 아랍국들의 입장은 다르다. 이라크 공격에 협조했다간 반정부 세력에 의해 정권이 붕괴할지 모른다.

미국의 공격에 앞서 이라크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이스라엘이 반격하면 아랍권 전체와 미국·이스라엘의 싸움으로 발전할 것이다.체니와 만난 아랍국 지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외교적 해결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는 완강하다.다른 나라들의 협조가 없으면 혼자서라도 공격할 생각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얻은 자신감, 이라크의 군사력이 허약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라크는 지난 10년간 유엔의 경제제재로 군사력을 별로 키우지 못했다. 35만 병력은 겉으론 그럴 듯하지만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반면에 미국의 군사력은 걸프전 때보다 훨씬 향상됐으므로 단기간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를 사용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걸프전에서 후세인은 생화학무기 사용을 자제했다. 그러나 이번 공격으로 죽느냐, 사느냐의 궁지에 몰리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현재 이라크는 6천개 이상의 생화학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가 이스라엘을 생화학무기로 공격할 경우 이스라엘이 핵무기로 보복, 핵전쟁이라는 극한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자면 대규모 지상군 투입이 불가피하다. 군사 전문가들은 25만 병력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식 대리전쟁'을 검토 중이다. 후세인에게 반기(叛旗)를 들 수 있는 세력은 이슬람 시아파(派), 쿠르드족, 그리고 해외의 망명단체가 있다. 이라크 인구의 6할인 시아파는 같은 시아파인 이란이 조종하기 때문에 시아파가 정권을 잡으면 '악의 축'의 하나인 이란을 키워주게 된다. 쿠르드족을 이용할 경우 쿠르드 독립국가 건설로 이어져 이웃 터키의 쿠르드족이 동요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맹방인 터키를 어떻게 달래느냐는 과제가 남는다.

정우량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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