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占치는 정치> "JP의 '뜨는 運'덕에 DJ 당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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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이 '천기(天機)'를 알기 위해 점을 보러 다닌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6년 가을, 15대 대선을 1년 남짓 앞두고 당시 김대중(金大中·DJ)국민회의 총재는 한화갑·한광옥(韓光玉)의원과 함께 경북 봉화에 있는 현불사 설송 스님을 찾아갔다. 이 자리엔 자민련의 사무총장이었던 김용환(金龍煥·현재 한나라당)의원도 있었다. 金총재는 설송스님에게서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예언과 함께 지역화합을 당부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金총재는 김용환 의원에게 "서울에서 꼭 한번 만나자"고 한 뒤 한광옥 사무총장을 통해 그해 11월 1일 목동 극비회동을 성사시켰다.

김용환 의원은 "현불사에서 金대통령과 우연히 만난 것이 목동 회동으로 이어졌고, 여기서 대선 필승전략인 DJP연합의 모든 것이 논의됐다"고 회고했다. 여권 관계자들은 이런 사연을 들어 현불사를 'DJP공동정권을 잉태한 곳'이라고 말한다.

사주와 역학을 하는 일부 역술인들은 97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의 운세가 좋았으며, DJ의 운은 상대적으로 약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DJ는 당시 운이 뜨고 있던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총재를 잡아 운을 키웠고, 이회창·이인제 두 사람의 왕성한 기(氣)는 서로 충돌하는 바람에 김대중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92년 대선에선 민자당 김영삼(金泳三)후보의 승리를 예측했다고 해서 역술인 백운산(白雲山)씨가 유명해졌다. 당시 여권은 민자당 내 직능국과 정보기관의 종교관리팀을 동원, 전국의 유명 역술인·무속인 등을 접촉해 '김영삼 대세론'을 일반인에게 전파토록 했다고 그 때의 관계자들이 전했다.

막강한 재력을 자랑하던 국민당 정주영(鄭周永)후보측도 역술·무속계를 파고들어 "양김시대는 끝났다" "鄭도령 시대가 왔다"는 '천운 순환론'을 전파시키려 노력했다.

정보기관 근무경력이 있는 한나라당 중진 의원은 "역술인 등을 관리하는 조직이 기관 안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96년 초 『국운』이라는 역술 예언서에 "2000년대의 첫 대통령은 현재 許씨 성을 가진 중령이나 대령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정보기관이 군 인사기록 카드에서 이 조건에 해당하는 장교들을 일일이 찾아 점검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5·16쿠데타를 일으킨 JP는 종종 사석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거사 보름 전쯤 석정선이란 육사 동기를 따라 당시 유명하던 종로의 백운학이란 역술인 집을 간적이 있다. 석정선이가 새로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잘 될지 궁금해서 알아보려고 간 것이고 나는 그냥 따라간 거지. 그런데 백운학이 대뜸 평복 차림의 나를 보고 '당신 지금 하는 일(쿠데타 모의)은 잘 될거요. 그대로 진행하쇼'라고 말해 속이 뜨끔했었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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