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6> 제100화 '환란주범'은 누구인가 (20) 홍재형씨와 이경식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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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나중에 알고보니 김영삼 대통령의 IMF행 결심에 영향을 미친 홍재형 전 부총리의 자문이란 1997년 11월 10일 오후, 11일 오후 두차례에 걸친 전화통화를 말했다.

洪전부총리가 첫 전화를 건 10일은 오전에 이미 강경식 부총리가 IMF행 검토를 보고한 날이었다.

당시 나는 洪전부총리가 金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평소 각계 인사들의 전화번호를 수첩에 깨알같이 적어놓고, 수시로 직접 다이얼을 돌려 민심 동향을 챙기는 것이 金대통령의 스타일임은 웬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洪전부총리가 문민정부에서 초대 재경원장관을 지낸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에게 경제문제에 대한 건의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뒷날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야 洪전부총리가 전화로 어떤 보고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金대통령이 검찰 답변서에서 밝힌 그 전화보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중에 외환위기감이 팽배해 있으며, 자칫 잘못하면 국가부도 위기로 갈 수 있으므로 IMF에 자금 지원을 조속히 요청하는 것이 좋겠다.

또 미국, 일본 등과 양자간 협상에 의한 자금조달은 과거사례로 볼 때 성사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며, IMF가 먼저 개입해야 미국, 일본도 따라오기 때문에 IMF지원 요청이 우선되어야 한다.'

외환상황의 심각성과 위기로의 진전 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당시 경제팀과 별 차이가 없었다.

다만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당장 IMF에 가지 않으면 국가부도가 날지 모른다고 강조한 점이 경제팀과 달랐다.

현직이 아닌 洪전부총리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건의였다고 생각한다.

金대통령에겐 종합대책과 더불어 IMF행을 건의한 경제팀 보고보다, 거두 절미하고 '국가부도 위기'나 '조속한 IMF행' 등의 직설적 표현을 사용한 洪전부총리의 건의가 더 심각하게 들렸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洪전부총리가 현직이었더라도 IMF행 외의 방법을 찾아보지 않고, 위기상황에 대한 분석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구상도 하지 않고 바로 IMF에 가야 한다고 대통령 재가를 요청했을지는 의문이다.

어차피 IMF가 지원조건으로 반드시 구조조정을 요구할 것인데, 이에 대한 아무런 구상도 없이 그냥 손을 벌릴 경우 IMF는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것이 책임을 져야 하는 현직과 책임이 없는 전직(前職)의 차이가 아닐까.

나중에 재판에서 밝혀졌지만, 당시 洪전부총리가 염두에 둔 것은 자금지원에 2~3개월이 소요되는 종전의 지원방식이었지, 경제팀이 구상했던 긴급지원절차(패스트 트랙)가 아니었다.

이런 점도 IMF행을 건의하는 그의 자세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당시는 한국은행도 연말까지는 외환보유액으로 꾸려갈 수 있다고 장담하던 상황이었다.

한편 그 즈음 나는 金대통령이 IMF행을 결정하기 위해 활용한 비공식 채널 중 하나가 이경식 총재로 알려지고 있는 사실도 알게 됐다.

97년 11월 10일 저녁 경제상황을 묻는 金대통령의 전화에 李총재가 외환상황과 함께 "IMF에 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그 역시 내겐 놀라웠다.

11월 7일 내가 주재한 회의에서 한은이 IMF행 검토 필요성을 제기한 이후 13일 오전까지 李총재는 IMF행과 관련해 11월 7일 한은의 견해보다 더 진전되거나 구체화한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13일 저녁 IMF행 최종 결정을 앞두고 예정에도 없던 점심회동을 무리하게 요청해 IMF행 여부에 대한 李총재의 의중을 확인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李총재가 경제팀의 IMF행 결정 사흘 전에 이미 대통령에게 IMF행을 강하게 건의했다니.

李총재는 외환위기 대응 과정에서 시종일관 姜부총리와 나와 함께 숙의했던, 경제팀의 핵심이었기에 놀라움은 더 컸다.

정리=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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