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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환영의 시시각각

월드컵을 위한 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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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월드컵 막후에선 ‘기도 전쟁’도 벌어지고 있다. 자국 팀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단식 기도까지 하는 신앙인들도 있다. BBC 보도에 따르면 일부 열성 남아공 팬들은 부부젤라를 불 수 있을 정도로만 허기를 채우며 기도하고 있다.

오는 23일 나이지리아전에서 태극전사들은 나이지리아 선수들뿐만 아니라 주술사들과도 대적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도 나이지리아의 주술사들이 영험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16강 고지를 넘는다면 16강전, 8강전에서 다른 아프리카 팀들과 마주칠 수 있는데, 이들 팀 뒤에도 주술사들이 버티고 있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아시아 교회와 더불어 세계 그리스도교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프리카 교회도 자국 팀을 위해 맹렬히 기도하고 있다.

월드컵이라는 ‘기도 전쟁’에 임하는 우리의 ‘기도 전력(戰力)’도 따지고 보면 만만치 않다. 불교 신자 선수가 4명 있는 우리 대표팀의 승전보를 위해 전국에서 불자들의 기도가 진행되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태평사는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는 태극기 2010개를 내걸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6개월 이상 기도한 우리나라 기독교도 그 이상의 열정으로 기도하고 있다. 그리스전에서 승리한 직후 교회에 다니는 선수들이 감사의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기도를 스포츠 승리의 수단으로 삼는 지나친 ‘종교실용주의’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떠올리게 할 법하다. 다만 기도로 ‘스포츠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스포츠 평화’를 기원하는 종교계 움직임이 강렬한 것은 다행이다. 칠레 가톨릭 주교회의는 “주님, 축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모토로 월드컵 캠페인에 나섰다. 정정당당한 경쟁으로 전 세계인이 하나 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다.

차기 캔터베리 대주교(영국 성공회의 수석주교)로 유력시되는 인물 중 한 명인 닉 베인스 주교는 월드컵을 위한 기도문을 발표했다. 기도문은 월드컵이 인류가 하나 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하며 월드컵에 관계된 모든 이들에게 신(神)의 도움이 있기를 간청하고 있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바하이교·기독교·불교·힌두교·이슬람교·유대교 등의 종교들이 월드컵의 성공을 통한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하지만 월드컵에서 종교·스포츠·민족주의가 서로 충돌할 위험성이 불식된 것은 아니다. 최근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선수들에게 기도 세리머니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브라질 선수들이 노골적으로 신앙을 드러내고 있는 게 이번 요청의 배경이다. 하지만 파라과이의 복음주의사제협회가 공식 성명을 내고 반발했다. 기도 세리머니 금지는 개인의 신앙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기도가 과연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기도, 특히 ‘남을 위한 기도(intercession)’의 효과에 대해 다양한 과학적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매년 약 500만 달러의 연구비가 기도 효과 연구에 투입되는데 아직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앙인들의 기도가 이번 월드컵에서 큰 효험을 보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특히 FIFA의 지침을 준수하는 멋진 기도 세리머니로 한국의 종교를 세계에 알릴 수 있기를 꿈꾼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