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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환 규제 첫날 … 원화값 예상밖 강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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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14일 외환시장은 개장 전부터 관심이 집중됐다. 13일 발표된 ‘자본 유출입 변동 완화방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처음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날 원화 값은 예상과 달리 장이 마감할 때까지 줄곧 강세를 보였다. 원화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23.9원 오른 달러당 1222.2원을 기록했다.

정부가 선물환 규제 카드를 꺼낸 것은 달러가 한꺼번에 들어왔다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한국은 외환시장이 완전 개방돼 경기가 좋을 때는 달러가 왕창 들어온다. 반면에 대내외 경제여건이 조금 안 좋다 싶으면 달러가 급속히 빠져나가곤 한다. 이게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한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핵심은 자본유출입을 어느 정도 제한하는 것이다. 이 경우 달러 유입이 줄면서 단기적으로는 원화가치가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14일 시장은 거꾸로 반응했다. 그렇다면 정부 대책이 효과가 없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오히려 시장에서 예상했던 수준의 규제안이 나온 데다 정부의 발표로 불확실성이 사라진 결과라는 분석이 더 강했다. 기업은행 자금운용부 김성순 차장은 “발표 내용이 예상한 정도인 데다 기존 거래분에 대해서는 2년간 유예를 해줘 당장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날 국내 증시가 강세를 보이면서 외국인이 순매수를 기록한 데다 유로화가 급등하면서 원화 값 상승에 힘을 더해 주었다.

이번 대책으로 국내 은행은 별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국내 은행의 자기자본 대비 선물환 포지션(한도)의 비율을 50%로 제한했는데, 현재 평균치는 그 한도에도 못 미치는 16%에 불과하다. 반면 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은 사정이 다르다. 외국계 은행은 그동안 국내 기업의 선물환을 받아주기 위해 본사로부터 단기로 달러를 빌려와 국내에서 원화로 바꾼 뒤 채권에 투자해 위험 없이 1.5~2.0%의 짭짤한 이익을 올렸다. 선물환 포지션의 자기자본비율을 250%로 제한하면 외은 지점은 선물환 거래를 줄여야 한다. 이들의 선물환 포지션은 현재 평균 301.2%에 달한다. 이는 곧 외은 지점의 이익이 준다는 뜻이다.

익명을 원한 외은 지점 관계자는 “외환시장을 자유화한 나라에서 이렇게 뒷걸음치는 것은 국가 신뢰도를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런 식이라면 굳이 한국에 지점을 둘 필요 없이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있는 아시아 본부에서 직접 거래를 하는 게 낫다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이번 규제가 한국 은행들의 외화 조달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규제가)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한국의 은행들이 외화자금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규제가 원화가치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 채 외화자금 부족을 초래할 것이라는 골드먼삭스의 보고서 내용을 소개했다.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들도 고민이다. 경기가 좋아져 수출기업들의 선물환 체결 수요가 늘어나도 은행들이 규제에 묶여 이를 받아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들이 환헤지를 하지 못하고 외환 변동의 위험을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다. 외환은행 경제연구팀 서정훈 연구원은 “획일적인 규제보다는 경기 상황에 맞는 탄력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윤·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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