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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복권 당첨보다 어려운 도쿄 伊식당 저녁식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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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도쿄(東京) 긴자(銀座)의 한 뒷골목. 매일 오전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20여m의 긴 행렬이 늘어선다. 좌석수 40개의 아담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라 베토라(LA BETTOLA) 앞이다. 종업원이 조그마한 칠판을 내걸면 순서대로 이름을 적어 넣고 자신의 입장시간을 확인한 뒤 흩어진다.

점심은 이렇게 선착순으로 줄을 서면 되지만 여기서 저녁식사를 한다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2000년 1년 예약은 1999년 여름에 모두 끝났다.그래서 21세기 첫해에 저녁식사를 하려면 20세기 중 예약을 해야 하는 레스토랑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해부터는 2개월치씩만 예약을 받고 있어 당첨 확률은 더 낮아졌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그 대답을 퀴즈로 대신해보자. 세계에서 이탈리아 다음으로 이탈리아 요리를 잘 만드는 나라는?

정답은 의외로 일본이다. 이탈리아 요리평론가들이 일본의 이탈리아 요리 수준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자기 나라 다음이라는 것은 최고의 칭찬이다.

일본 요리사들은 본고장인 이탈리아에까지 진출해 있다. 현지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는 일본인이 무려 4천명이다. 견습생에서 그치지 않고 고급 레스토랑의 셰프(요리장)가 된 사람도 많다. 이들이 일본 명절을 맞아 한꺼번에 귀국하면 이탈리아의 음식맛이 뚝 떨어진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일본에서 이탈리아 요리는 일상생활 깊숙이 퍼져 있다. 일본 전국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수는 약 4천5백개에 이른다. 도쿄에만 1천5백개가 있다. 특별한 날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요리가 아니라 1천엔(약 1만원) 내외의 점심식사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수준으로 자리잡았다.

이탈리아 요리뿐 아니다. 프랑스·스페인·베트남 등 각국 요리가 본고장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사시미와 스시로 연상되던 일본인들이 외국요리에도 일가견을 지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라 베토라의 주인 오치아이 쓰토무(落合務·54)는 "외국문물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는 일본인의 특성이 일본의 서양요리를 발전시켰다"고 설명한다.

요리사라는 직업에 대한 일본의 사회적 평가는 매우 높다.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라 장인으로 대우를 받는다. 이를 반영하듯 요리공부 하는 것을 '슈교(修業)'라고 한다. 전문직업인이 되기 위해 기량을 갈고 닦는다는 뜻이다.

또 일본 요리사들의 장인정신을 빼놓을 수 없다. 오치아이만 해도 요리를 돈 버는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요리는 손님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도구며 레스토랑은 손님들에게 원기를 불어 넣어주는 공간이라는 것이 그의 요리철학이다. 이를 고집하다 보니 돈과는 거리가 멀다. 요리에 전념하기 위해 체인점사업 제의도 모두 뿌리쳤다.

그까짓 먹는 것 가지고 뭘 그리 심각하게 따지느냐고? 음식은 곧 문화다. 일본에서 외국요리가 발전한 것은 그만큼 문화의 저변이 넓고 탄탄하다는 얘기가 아닐까.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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