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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심는 지자체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경남 김해시가 놀랍고도 신선한 결정을 했다. 러브호텔의 조잡한 설치물을 규제한다고 한다. 김해시가 발표한 '숙박업소 지도단속에 관한 조례'가 그것이다.

전국에 산재한 러브호텔의 행태는 우리 국토의 추악한 얼굴의 하나가 돼버렸다. 산속·도로변·강가…. 마구잡이로 들어선 그 환경파괴만이 아니다. 마비된 윤리의 한 축이 그렇게 서있는 것 같고, 때로는 우리 정서의 환경까지 저렇게 파괴되고 있는 게 아닌가 두렵기까지 하다.

무슨 자랑스런 회의를 한다고 줄레줄레 건 만국기, 물침대가 어쩌고 무인투숙시스템이 어쩌고 하는 현수막, 미의식과는 담을 쌓은 조잡의 극치인 야간조명. 거기에 투숙객의 차량번호를 감추기 위해 너덜거리는 주차장 출입구의 천막가리개. 바로 이런 것을 규제한다고 한다. 너무 반가운 일이다.

몇몇 도시에서 주부들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러브호텔 거부운동을 떠올릴 것도 없다. 김해시의 결정이 빛나는 것은 바로 그 결정이 시민의 정서를 건강하게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김해시가 얼마든지 해내는 일을 다른 지자체는 왜 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직무유기에 대한 분노가 깔린다.

희망을 심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있다. 문화는 쌓이고 익고 세월에 젖으면서 이뤄지는 것이기에 그들의 모습이 더욱 빛난다. 이렇게 신선한 지자체 가운데는 남해군도 있다.

남해가 2002 월드컵에서 덴마크 팀의 캠프지로 결정됐을 때 나는 '그 작은 지방도시에서…어떻게'하며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덴마크 팀 캠프 유치로 남해는 그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게 됐고, 관광객 유치로 지역경제활성화에 큰 힘을 얻을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인구 6만명의 남해군이 해낸 일이다.

그러나 이런 오늘의 남해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6개의 잔디구장을 갖춘 '남해 스포츠 파크'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곳 환경에 적응할 잔디를 시험적으로 초등학교 운동장에 심은 것이 96년이었다. 그렇게 해서 추위에 강한 독일산 잔디가 자라게 됐고, 연간 1백일 동안 사용이 가능한 그라운드를 만들어냈다.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아 남해를 캠프지로 결정하려고 독일·호주와 함께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구체적인 검토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남해는 8백명 규모의 덴마크 팀 응원단을 만들어 우루과이·세네갈·프랑스와의 예선전이 열리는 그라운드를 찾아가 사물놀이가 어우러진 응원을 펼친다고 한다. 이 모습은 세계의 축구 팬에게 전해질 것이다. 월드컵 하나를 놓고도 거기에 문화 만들기가 있고, 지역경제의 활성화가 있고, 군민(郡民)의 하나됨이 있다.

남해군의 월드컵 캠프지 준비활동은 외국의 언론에서까지 극찬을 받았다. 지난 12월 일본 아사히신문의 스포츠 칼럼에서 나카고지 도오루(中小路澈)기자는 남해의 캠프지 유치활동을 상세히 전하며 '지방도시 부흥과 축구발전을 양립시킨, 한층 빛나는 것이었다'고 쓰고 있다.

김해나 남해를 본보기로 삼아 '문화 만들기'에 좀더 눈을 돌릴 일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어떤가. 월드컵을 맞아 서울시가 파악하고 있는 노숙자 3백여명을 지방연수라는 명목으로 잠시 지방으로 데려가 서울로부터 격리시킨다고 한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좋지 않은 모습으로 비칠 것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발상인 모양이다.'노숙자 지방연수'라니, 이제는 노숙자도 연수(!)를 다니나.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감추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 발상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모르는 이 주객전도의 의식을 어찌할 것인가. 무서운 것은 외국인 관광객이 아니다. 우리 시민, 그 주인의 삶의 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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