泰 정부 ― 언론 극한 대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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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태국 정부와 언론의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탁신 시나왓(사진) 태국 총리 산하 돈세탁방지국이 탁신 총리에게 비판적인 언론인들에 대해 은행 계좌 조사를 벌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태국 언론은 '언론 재갈 물리기'라며 맹렬히 반발하고 있다.

8일자 석간 영자지인 '네이션'은 '정부의 마녀사냥'이란 제목으로 탁신 정부의 언론자유 침해 의혹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전날 탁신 총리 얼굴에 히틀러의 수염을 붙인 만평을 싣고 이번 사건을 '탁신 게이트'로 명명하기도 했다.

돈세탁방지국은 5개 언론사 편집국장급 간부 17명 및 가족들의 금융거래 내역을 통보해 달라고 17개 은행에 요청한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태국 신문들은 언론인 수백명의 서명을 받은 청원서를 오는 11일 마눈크릿 룹카촌 상원의장에게 보내 조사를 요청할 예정이어서 최악의 경우 상원이 탁신 총리를 탄핵하는 사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최악의 정언(政言)갈등=지난 4일 태국 대부분의 라디오 방송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국방부가 태국 유수의 언론그룹인 네이션 종합 미디어그룹의 라디오 채널에 대한 방송 면허를 취소하면서 촉발됐다. 태국의 경우 오랜 군부 통치의 유산 때문에 아직도 라디오 방송의 소유는 국방부가, 운영은 민간이 맡고 있다. 네이션 그룹은 언론 통제라고 반발하며 TV에서 정치뉴스를 아예 보도하지 않고 있다.

태국 정부는 또 총리와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불화설을 보도한 홍콩 시사주간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의 특파원을 추방하려 했다가 철회했으며, 불리한 기사를 실은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대해 판매금지 조치를 내리는 등 외국 언론과도 불편한 관계를 보이고 있다.

언론인 계좌추적 파문과 관련,탁신 총리는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일이며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갈등의 원인=정보통신 사업으로 떼돈을 번 시나왓 그룹 총수이기도 한 탁신 총리는 1994년 추안 리크파이 총리 집권 당시 외무장관에 발탁됐다가 언론으로부터 '정경유착의 표본'이라는 집중 포화를 맞아 중도하차했다. 그 앙금이 남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칼럼니스트들은 비판을 참지 못하는 그의 통치 스타일을 빗대 '육군원수 탁신'이라고 비난해왔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선거관리위원회와 언론기관들의 권한을 최대한 보장해준 97년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사전 정지용으로 언론을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고 보도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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