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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취·동의나물 척 보면 아세요? 등산길에 생각없이 뜯어먹다간 큰일 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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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식물이 생명력을 뽐내며 ‘날 좀 봐주오’ 손짓하는 계절이 왔다. 그 싱그러움에 흠뻑 빠져있다 보면 ‘나물로 무칠까, 화전을 해볼까, 술을 담글까, 뿌리를 갈아 마실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보건복지부 지정 독극물전문 응급의료센터) 임경수 교수는 “의외로 많은 분이 산이나 들에서 직접 식물을 채취해 먹는다”며 “독초를 식용으로 오인하고 먹었다가 사망에 이르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매년 끊임없이 독성식물에 중독된 환자가 발생해 병원 응급실 신세를 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몇 명의 환자가 어떤 식물의 독 성분에 중독돼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관련 정보가 전무한 상황이다.

“뭔지 알아야 치료를 하죠.” 임 교수가 총대를 멨다.

임경수 교수(오른쪽)가 경기도 용인 한택식물원에서 제자들에게 독성식물을 직접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무섭게 힘들다며 돌아섰던 그가 식물의 독을 연구하겠다고 주말마다 산을 찾았다. 직접 식물의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도 구입하고 사진촬영법도 배웠다. 그의 연구실엔 식물과 사진에 대한 책이 가득하다. 야산과 해안가·습지·식물원 등을 누비며 무려 320여 종의 식물을 카메라에 담았다. 독초에 중독된 환자를 진료하는 후배와 동료 의사들을 위한 정보였다. 그렇게 펴낸 책이 지난달 출간된 『식물독성학』이다.

국내에는 국화과·양비귀과 등 80개 과에 총 312종의 독성식물이 자생한다. 문제는 독초와 약초의 구분이 쉽지 않다는 것.

새싹 많이 먹는 봄~초여름 중독사고 많아

국내 독성식물을 연구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1년간 주말마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닌 임 교수도 “뭐가 독초고 약초인지 헷갈린다”고 말할 정도다. 잎이 다 자란 식물은 저마다 특징을 보이지만, 새싹이 돋을 때는 제아무리 식물전문가라도 구별이 어렵다. 나물은 잎이 질겨지기 전 여린 새싹일 때 맛이 좋기 때문에 독초 중독사고는 봄부터 초여름 사이에 많이 발생한다.

곰취인 줄 알고 먹었는데 동의나물(독초)이었다거나, 칡뿌리나 더덕·우엉인 줄 알고 캤는데 자리공(독초) 뿌리였던 경우다. 생김새가 비슷한 진달래와 철쭉도 중독사고의 단골메뉴. 화전으로 부쳐먹은 진달래는 식용인 반면 꽃잎에 반점이 있는 철쭉은 독초다.

독초 중에는 먹은 지 불과 몇 분만에 반응을 보이는 맹독성 식물도 있다. 빨간 열매가 특징인 천남성은 날것으로 먹으면 목구멍이 타는 듯하면서 생명을 위협한다.

독성식물은 식물마다 어느 부위를 얼마만큼 먹었느냐에 따라 복통과 설사·구토·사지감각 이상·정신발작·호흡곤란 등 나타나는 증상도 각양각색이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손창환 교수는 “체내로 들어온 독 성분이 위장관 점막을 자극해 구토와 설사를 유발하고 피를 토하게 한다”며 “심장 기능을 억제해 혈압이 떨어지고, 맥박이 줄어들어 어지럼증과 실신을 일으키는 독도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흔히 먹는 고사리나 원추리·두릅·다래순 같은 식용식물에도 독이 있다. 누구도 따먹지 못하게 식물 스스로 독을 품는 일종의 보호장치인 셈이다. 실제 지난해 3월 경기도 분당의 한 대형쇼핑몰 직원 700여 명이 구내식당에서 끓는 물에 충분히 데치지 않은 원추리 나물을 먹은 뒤 집단으로 중독증상을 일으킨 사례가 있다. 강원대병원 응급의학과 조준희 교수는 “식용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다면 되도록 먹지 말고, 먹더라도 끓는 물에 충분히 데치고 햇볕에 말리면 독이 상당 부분 제거된다”고 말했다.

물론 독성식물이라고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들 식물에 든 사포닌이나 스테로이드·알칼로이드 등의 독 성분은 염증이나 암세포를 공격해 뛰어난 치료효과를 내기도 한다. 임경수 교수는 “독초가 때로는 약초로도 쓰이기 때문에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며 “ 야생에서 자란 식물을 가리지 않고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병원 이송 땐 왼쪽 옆구리 땅에 닿도록 눕혀야

독성식물을 먹었다가 중독 증상이 나타난다면 최대한 빨리 병원부터 찾는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환자의 자세가 중요하다. 먼저 환자의 왼쪽 옆구리가 땅에 닿도록 옆으로 눕힌다. 오른쪽에 위치한 십이지장이나 소장으로 독 성분이 넘어가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최대한 지연시키기 위해서다. 또 손가락을 입에 넣어서라도 독초를 토하게 하고, 이후에는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한다. 이때 문제의 원인이 된 독초를 병원으로 가져가면 진단하고 처치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독초를 섭취한 지 1시간 이내면서 환자의 의식이 명료하다면 병원에선 위세척을 한다. 설사를 하는 환자에겐 지사제를 쓰고, 맥박과 혈압이 낮은 환자에겐 수액 조절을 빠르게 하는 등 조치를 취한다. 독 성분이 이미 위를 통과해 소장까지 갔다면 활성탄(숯가루)을 투여한다. 손창환 교수는 “독이 숯가루에 흡착돼 대변으로 배출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응급조치를 받으면 몸에서 독은 제거될 수 있으나 흡인성 폐렴이나 식도파열 등의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산에서 조심할 독초들

동의나물 곰취와 닮았다. 곰취는 잎이 부드럽고 산기슭에 많은 반면 동의나물은 습지나 물가에 서식. 혈압을 떨어뜨려 2~3일간 지속(左). 박새 산마늘로 오인하기 쉽다. 심부전이나 심정지·혈압저하. 성장하기 전까지 산마늘과 구분이 어렵다(右).

만병초 독성이 있는 희귀식물. 섭취 1시간쯤 뒤부터 어지럼증과 구토. 연한 잎은 식용으로도 쓰이나 많이 먹으면 생명 위독. 아이비 실내식물로 많이 키운다. 잎·줄기를 먹으면 복통과 구토가 나면서호흡곤란과 혼수상태에 빠진다. 집에 어린이가 있다면 주의. 자리공 칡·더덕·우엉으로 오인된다. 허리 통증을 해소하기 위해 잎을 따다 쌈으로 먹는 경우가 있다. 이를 먹은 어린이가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다.(왼쪽부터)


임경수 교수가 직접 산과 들을 찾아 다니며 찍은 독성식물 사진. 이전에는 등산이나 사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가 식물독성학을 정리하기 위해 일부러 주말마다 산을 찾았다. [사진촬영=임경수 교수]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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