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소설을 찍다 : 소설·사진집 『피아노와 백합…』 출간기념 만남.. 소설가 윤대녕, 사진작가 조선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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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5일 오후 소설가 윤대녕(41·사진(左))씨와 사진작가 조선희(32)씨가 만났다. 윤씨는 '존재의 시원(始原)을 탐구하는 작가'라는 평을 받은, 1990년대적 감수성을 대표하는 소설가며 조씨는 최진실·조성민 부부의 결혼 사진을 비롯해 2% 부족할때·지오다노 등의 광고 사진을 찍은 광고·연예계의 스타급 사진작가다.

프로필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둘의 만남은 소설·사진집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이 계기가 됐다. 책에는 윤씨의 기발표작인 동명의 중편소설과 조씨가 그리스·터키 등을 한 달간 돌며 소설의 이미지에 맞춰 찍은 사진이 2대 1의 분량으로 실려있다. 출판사의 상업적 기획 의도와는 별개로 연예·광고계의 사진작가와 순수문학 작가, 즉 외형상 배타적으로 보이는 두 분야 문화 생산자의 장르간 대화가 이뤄진 것이다.

▶조=이정재씨를 많이 찍어봤는데 일상적으론 느낄 수 없는 내부의 어떤 이미지가 순간적으로 잡혔을 때 좋은 사진이 되더라.앞 뒤로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말이다.

▶윤=소설에도 순간 포착이 중요하다. 우리의 일상과 의식에서 누락된 한 순간을 포착해 저편의 진실을 보여주는 게 글쓰기다. 글과 사진은 정적이고 정지돼 있고 생각할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조=이 소설은 사막을 주요한 이미지로 해 떠남이 삶의 본질임을 의미한다. 반면에 사진은 의도하는 바를 글처럼 명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그런데도 요새 젊은 애들은 오래 걸리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책을 안읽는다. 시간 대비 즐거움의 효용성을 따진다고 할까.

▶윤=영상에 몸을 맡기는 행위는 지극히 수동적이라 편하지만 책읽기는 혼자서 하는 일종의 노동이다. 인터넷과 영상매체를 동시에 놓고 보면 문학이 선택받기 힘들지만 힘든 선택 후에는 얻어지는 게 많다. 존재의 지평이 넓어지는 인식의 충격처럼.

▶조=인터넷을 보면 그림과 글이 행복하게 만나고 있다. 나는 우리 시대에는 둘이 함께 했을 때에라야 동시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윤=작가가 되기 전 여성의류 업체에서 광고·홍보 담당을 해 영상에 대해 좀 안다. 내가 등단한 90년대는 영화로 대표되는 영상이 젊은 세대의 집단 무의식을 장악하고 있는 시대였다. 필요한 게 바로 눈앞에 떠올라야 하는 시대란 뜻이다. 독자를 탓하기 전에 창작자가 먼저 바뀐 상황과 타장르에 열려 있어야 한다.

▶조=그래도 제일 아름다운 건 복제 불가능한 아날로그다. 내가 사진을 수만장 찍었지만 돌아가시기 1년 전에 찍은 서정주 시인 부부의 사진을 제일로 친다. 마당에서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있는 포즈인데 파란만장하게 산 미당의 미안함과 사랑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반면에 이쪽은 2~3년 전부터 완전히 스타마케팅 위주다. 옷 광고도 멋있는 옷보다 스타의 이미지를 중시한다. 단지 예쁘게 보이려는, 죽은 사진이 많다. 나 자신도 부끄러울 때가 잦다.

▶윤=이미지가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시대에 스타마케팅은 필연적인 측면이 있다. 문학계에도 스타마케팅이 있다. 문학도 누구의 책이 나오면 사보게 하는 전략을 필요로 하게 됐다. 그러나 스타가 탄생하면 다른 작품이 균형있게 읽히고 유통되는데 방해가 된다. 참 어려운 시대다.

글=우상균·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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