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두 번의 실패는 과학주권 찾기 위한 또 다른 시작”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70호 11면

10일 오후 5시1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나로호(<1>)는 이륙 137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2>) 화염에 휩싸인 뒤 추락(<3>)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 땅에서 우주로 쏘아 올리는 나로호는 결국 제주도 남쪽 해상에 수장됐다. 2차 시험 발사는 1차와 달리 우주 근처에도 못 가 보고 고꾸라졌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추락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로호 프로젝트의 파트너인 러시아가 있기 때문이다. 우주개발 강국인 러시아와 손을 잡고 있는 이상 수장된 나로호 발사체를 끌어올리기도 힘든 실정이다. 한국이 반도체와 액정화면(LCD) 등 정보기술(IT) 강국이라지만 전자·기계장치의 집결체인 로켓만큼은 후진국의 면모를 벗어나지 못했다. 벌써 5000억원의 돈이 허비됐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기술 약소국의 설움 절감한 나로호 발사

‘빨리빨리’에 길들어 있는 우리로선 이해 안 가는 부분이 그래서 많을 뿐이다. 그러나 처음 두 번의 발사 실패는 당연한 ‘수업료’로 여기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나로호 2차 발사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7일 발사체를 발사대에 세우는 작업부터 말썽을 일으켰다. 발사대와 나로호 간에 전기를 연결하는 ‘케이블 마스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나로호를 발사대에 세우는 작업이 5시간 넘게 지연된 것이다. 이날 오후 3시50분에 기립됐어야 할 나로호가 오후 9시가 넘어서야 세워졌다. 케이블 마스트를 통해 발사체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이상이 생기면 고칠 수 있는데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고장을 일으킨 것이다. 결국 케이블 마스트 자체의 고장이라기보다는 소프트웨어의 이상으로 결론지었다.

연구원들 피로 누적도 실패의 원인
이주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8일 브리핑에서 “집에서 PC와 프린터를 연결할 때와 비슷한 오류가 발생한 것일 뿐”이라며 “맞춰야 할 핀의 수가 수천 개여서 약간의 오류가 생겼지만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와 예정됐던 9일 발사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게 아니었다. 김중현 교육과학기술부 2차관이 9일 오후 5시 발사를 공표한 지 30분도 안 된 오후 2시쯤 발사대 주변 소화용액이 분출한 것이다. 지난 4일 시스템 점검 결과 정상으로 판정 내린 소화설비가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다.

분출하는 소화용액에 놀란 우주센터 직원 두 명이 지하로 통하는 철문을 열기 위해 달려갔다가 열리지 않자 두 팔로 X자를 그리는 모습이 전국에 생생하게 방송됐다. 결국 발사는 하루 연기됐다. 이 원장은 소화용액 분출 직후 브리핑에서 “소화용액이 로켓의 위치와 무관한 곳으로 뿜어졌다”며 “육안으로 확인한 결과 소화용액이 전혀 묻지 않았다”고 밝혔다.

나로우주센터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나로호
의 발사가 상당 기간 지연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오작동이 발생하니 시간을 갖고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김 차관은 10일 발사를 발표했다. 미국의 위성이나 미확인 비행물체와 충돌할 가능성이 없는 오후 5시1분이었다. 오전에는 구름층이 문제가 됐으나 호전되면서 결국 발사는 예정대로 진행됐고, 나로호는 137초간의 짧은 비행에 만족해야 했다.

곳곳에서 10일 발사는 무리였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패배한 정부와 여당이 국면 전환용으로 밀어붙였다는 소문이 퍼졌고, 일각에서는 석 달 이상의 타향살이에 지친 러시아 연구진들이 본국으로 하루속히 돌아가기 위해 발사를 강행했다는 미확인 보도가 나왔다. 김 차관은 10일 발사를 발표하는 브리핑에서 “발사체와 발사대가 모두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고 밝혔다.

온갖 오작동이 이어지면서 연구원들의 피로 누적도 실패의 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나로호 발사가 오전과 오후에 모두 가능하지만 연구원과 지휘통제실 근무 인력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오후 5시 안팎 발사를 선호한다는 게 나로우주센터 측의 답변이다. 그만큼 근무 환경을 최적화해 또 다른 변수를 만들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발사체 기립 이상에 소화용액 분출 등 갖가지 오작동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사후 조치와 원인 분석으로 밤샘 작업이 계속됐다. 결국 10일 오전 직원 식당에서 발사체를 담당하던 연구원이 실신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달에는 지상장비 온도 조절 보조 오퍼레이터로 일해 온 러시아인이 부산에서 음주 후 자해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교과부는 개인적인 문제로 자해했다고 발표했으나 정작 본인은 경찰에서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를 이유로 밝혔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정신은 안 통해
2004년 한국과 러시아가 우주개발 협정을 맺을 당시 불평등 협정이라는 논란을 낳았다. 두 차례의 발사 중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1단 로켓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조항은 그런대로 설득력을 얻었지만 1단 로켓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통제됐다. 비행 중 1단 로켓이 보내는 데이터는 암호화돼 있어 한국 측이 수신하더라도 이를 알아낼 수 없다. 러시아 측에 2억 달러를 지급한 사실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비싸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또 실패에 대한 책임 공방이 벌어질 경우 러시아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특히 잔해물을 태평양에서 인양하더라도 1단 로켓은 러시아가 가져가기로 돼 있다. 발사체와 관련된 기술은 전 세계에서 9개국만 갖고 있어 기술 약소국의 설움이 따로 없다.

게다가 러시아 발사체 업체인 흐루니체프는 성능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1단 로켓을 팔아먹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국내에 들어온 러시아인들의 작업 과정은 철저한 통제 속에 이뤄졌다. 그들은 금고처럼 만들어진 별도의 공간에서 작업을 했다. 작업 공간을 비울 때는 유일한 출입문 틈 여러 곳에 자신들이 가져온 얇은 테이프를 붙여 놓았다. 보안을 위해서다. 나로우주센터에서 만난 한 러시아인들은 기자들의 취재를 피하기 위해 “난 여행객”이라고 잡아떼기 일쑤였다.

이제 3차 발사에 집중해야 한다. 정확한 원인 파악과 서로의 책임을 따지게 되면 내년 발사도 쉽지 않다. 3차 발사가 내년이 되든 2∼3년 후가 되든 중요하지 않다. 대신 우주기술 개발은 계속돼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항공우주기계공학부 교수는 “우주개발 기술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얻을 수 있다”며 “이번 실패는 한국형 발사체를 개발하기 위한 과정으로, 과학 주권을 찾기 위한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했다.

우주발사체는 기술적 난이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이 시점에서 1차 발사와 2차 발사 동안 러시아인들의 어깨너머로 경험을 쌓은 인력들의 특별관리가 필요하다. 출연연구원 연구발전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발사체 기술은 외국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이번 실패에서도 다시 한번 우리 기술의 자립이 요구되는 교훈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1970년대식 추진력으로는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