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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2000년 9월 28일 당시 이스라엘 야당인 리쿠드 당의 아리엘 샤론 당수는 20여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유대인들에게 금기시돼 있는 동 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사원을 무단으로 침범했다. 동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귀속을 주장해 왔던 샤론의 이같은 행동은 다분히 계산된 정치적 시위로, 두 가지 커다란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다.

그 하나는 제2의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민중봉기)의 촉발이다. 알 아크사 사원은 메카·메디나와 더불어 이슬람교의 3대 성지 중 하나다. 그리고 동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에 있어 포기할 수 없는 영토상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격렬한 저항은 예상된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에후드 바라크 총리가 이끌던 노동당 내각의 실각이다. 샤론은 팔레스타인의 민중저항에 따른 정정 불안이 바라크 총리의 유화 정책에 기인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강경 정책에로의 회귀만이 위기 극복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샤론은 이스라엘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2001년 2월 6일 총리에 취임했다.

샤론은 취임 이후 철저히 강경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그 동안 추진해오던 평화 협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서안 등 점령지구에 이스라엘 정착촌의 건설을 계속해 나갔다. 팔레스타인 과격파들에 대해서는 탱크·공격용 헬기·미사일, 그리고 F-16 전투기까지 동원해 정규전을 방불케 하는 보복 공격으로 맞서왔다. 또한 지난해 12월부터는 사태 악화의 책임을 물어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에 대해 사실상의 가택연금 조치를 취해오고 있다.

이러한 강경 대응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00년 9월 이래 쌍방의 희생자 수가 1천2백명을 넘어서고 있고, 팔레스타인 과격파의 지속적인 자살테러 위협으로 이스라엘 국민들은 유례 없는 불안에 떨고 있다. 이 와중에 평화를 위한 민중 시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가 하면, 2백50명의 이스라엘 장교와 병사들이 가자와 서안지구에서의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양심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1천여명의 이스라엘 예비역 장성과 장교들이 가자와 서안지구로부터의 즉각 철수, 점령지 내 이스라엘 정착촌의 해체, 팔레스타인 국가인정 등 오슬로 평화협정의 이행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샤론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의 1차적인 책임은 샤론의 무리수에 있다. 아라파트를 제거하고, 오슬로 협정을 파기하는 동시에 가자와 서안지구를 재점령해 비무장시켜야만 이스라엘의 안보가 보장될 수 있다는 샤론의 무모한 망상이 오늘의 비극을 가져 온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인위적으로 안보 위기를 조장하고 이를 정권 창출의 기제로 악용한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미국 또한 샤론의 극단주의를 부추기는 역할을 해왔다. 부시 행정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의 평화 협상을 클린턴 행정부의 유산으로 간주, 이를 무시하고 샤론의 강경정책을 두둔하고 나섰다. 특히 9·11 사태 이후 부시 행정부는 팔레스타인의 테러 행위를 공식적으로 비판하며 이스라엘의 대 테러 보복을 전폭적으로 지원, 정당화해 주었다. 이러한 편파적 자세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팔레스타인도 책임을 면키는 어렵다.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상은 테러 종식을 전제로 시작됐고 이 전제 조건은 지켜져야 했다. 그러나 아라파트는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와 같은 과격파 조직들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고, 이는 테러의 확산과 이스라엘의 불신을 증폭시켜왔다.

이스라엘의 딜레마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테러와 보복만으로는 안보와 평화를 구축할 수 없다. 더 더욱 안보 사안을 국내정치적 도구로 악용·오용해서는 안 된다. 이와 더불어 인내와 관용, 대화와 설득을 통한 노력만이 비극의 땅 팔레스타인에도 희망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평화를 바라는 이스라엘 시민들의 이해와도 일치한다. 이를 위해 미국의 건설적인 중재자 역할은 필수적이다. 이렇게 보면 팔레스타인이나 한반도, 그 평화의 전제조건에 있어서는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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