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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道的 개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북한에 대해 "주민들의 굶주림을 방치하고 투명하지도 않고 외부와 단절된 정권""내가 악의 축이라고 표현한 것은 주민이 아니라 북한 정권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제도 그는 "미국은 투명치 않은 폐쇄사회, 그들의 주민을 괴롭히는 사회들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도록 용납치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선량한 사람(북한 주민)을 괴롭히는 악당(북한 정권)을 응징해야 한다는 식의 '인도적 개입' 발상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4세기 로마의 법률가이자 성직자였던 암브로시우스는 "박해당하는 친구를 돕지 않는 인간은 가해자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셈"이라고 단언했다.

이런 신념은 중세에도 이어진다.'국제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네덜란드 학자 휴고 그로티우스(1583~1645)는 '정당한 전쟁'이 되기 위한 전쟁 목적으로 자기방어·재산 되찾기·징벌을 들면서 "학정에 시달리는 타국 국민을 구하기 위한 '남을 위한 전쟁'도 정당하다"고 설파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상황에 들어가면 어디까지가 인도적인지 애매해지기 일쑤다.요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국제 전범재판을 받고 있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 같은 '도살자'마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유고 공습(1999년)이야말로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미 프린스턴대 교수 마이클 왈처는 역사상의 방대한 사례들을 검토한 저서 『정당한 전쟁, 부당한 전쟁(Just and Unjust Wars)』에서 "인도적 개입이라고 할만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인도적 동기와 다른 동기가 섞여 있는 경우가 몇 건 있을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스페인의 식민지이던 쿠바에 대한 미국의 지원(1898년)과 인도가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에 개입한 일(1971년)이 그런 드문 경우라는 것이다.

부시의 북한 관련 발언도 비록 인도주의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다른 동기가 많이 깔려 있을 것이다. 물론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잘 아는 우리로서는 부시의 발언을 무조건 백안시하기 어렵다. 문제는 미국의 '인도적' 무력개입이 현실화될 경우 남한이 엄청난 피해를 볼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이다. 인도적 개입이 비인도적 참화를 초래한 사례는 많다.

노재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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