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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재산 안 밝힌 공직자 33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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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93년 공직자들에 대한 재산공개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신고 및 사후 검증제도가 부실해 부정부패 방지라는 당초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고단계에서 활용되는 고지(告知)거부제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공직자윤리법 12조의 '부양받지 않는 직계 존비속은 고지를 거부할 수 있다'는 규정을 이용한 고지거부제가 변칙 상속이나 재산 축소 또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재산의 노출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위 공직자의 친인척이 연루된 각종 게이트 사건이 연일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고위 공직자의 가족들이 보유한 재산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8일자 관보를 통해 공개된 고위 공직자 재산 변동 내역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33명이 고지거부제를 이용, 가족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취임한 98년 2월부터 지금까지 차남과 3남 재산에 대한 고지를 거부하고 있다.

또 공직사회의 기강을 책임지는 감사원의 이종남 원장, 국가정보원의 장종수 기획조정실장, 투명한 돈의 흐름을 좇아야 할 국세청의 손영래 청장 등도 직계 존비속 가운데 1~2명에 대한 재산공개를 거부했다.

강동석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오홍근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강동연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최수병 한국전력공사 사장, 김진호 한국토지공사 사장 등 공기업 사장 가운데 일부도 가족들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았다.

관보에서 거부 이유를 밝힌 사람은 전윤철 대통령비서실장(장남 삼성전자 재직), 국정원 장종수 실장(어머니를 형이 부양, 자녀의 경우 밝히지 않음), 김승규 대검 차장(장남 결혼)뿐이었다. 나머지는 거부사유 조차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직자들은 예금현황, 주식보유현황, 부동산 현황 등을 꼼꼼하게 정리해 공개했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모든 면에서 국민들의 모범이 돼야 할 고위 공직자에 대해서는 고지거부를 못하게 해 부정부패 방지를 위해 도입한 본래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사후 검증과정이 취약한 것도 문제다.

행정자치부는 신고된 내용을 기초로 금감원 등에 조회를 의뢰, 금융 및 부동산 전산자료 대조를 통해 사실확인만 할 뿐 재산형성 과정은 검증하지 않는다. 인력이 너무 부족한 데다 검증할 만한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작 15명의 인력으로 7만4천6백여명에 달하는 신고대상자의 재산형성 과정과 그 타당성을 가려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조사기간도 3개월(최장 6개월)에 불과해 사후 검증작업이 사실상 겉치레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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