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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국가 과제 <6> 철길을 살리자 (下) : 原價 60%수준 요금 현실화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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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철길이 죽어가고 있다. 눈덩이처럼 쌓여만 가는 빚 때문이다. 매년 적자가 늘어 이젠 연간 5천억원이 넘는다. 철도는 체증없는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자 뛰어난 화물수송 능력으로 국가 경쟁력의 뿌리다. 철길이 죽으면 도로가 막히고, 물류비용이 비싸져 나라 경쟁력도 크게 떨어진다. 어떻게 살려야 하나.

◇돈을 벌게 해주자="지금처럼 만년 적자 상태에선 아무 것도 못한다. 흑자를 내야 투자를 할 수 있고, 그래야 미래도 있다." 교통개발연구원 이창운 박사는 "현재 기차 요금은 원가의 60% 선에 불과해 아무리 경영을 잘 해도 흑자를 낼 수 없는 구조"라며 "요금을 과감히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낮은 요금으로 생긴 적자를 재정에서 메워주는 방식은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누린 혜택(적정보다 싼 요금)을 철도를 전혀 타지도 않은 일반 국민이 대신 (세금으로)물어주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차제에 요금 차등화도 필요하다. 국내에서 가장 비싼 열차인 새마을호의 서울~부산 요금은 현재 3만6백원으로 항공요금의 절반 수준이나, 이웃 일본의 신칸센 요금은 항공 요금의 85%나 된다. 이래선 흑자를 낼 수 없고, 돈이 없으니 질 높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도 없다. 비싼 요금을 받더라도 고급화해 까다로운 비행기·승용차 이용자들을 철도로 끌어들이는 게 숨통을 트는 길이다. 이와 함께 영세민·서민들도 기차를 탈 수 있게 싼 값에 운행하는 기차도 확충해야 한다.

◇정부 투자도 문제=부채가 쌓이면 메워주는 식의 미봉책은 더 이상 안된다. 고속철의 경우에도 정부는 건설비용 18조원 중 35%만 재정에서 대고 나머지는 새로 발족할 철도공단에 넘긴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자본금도 없는 신설 공단이 무슨 수로 이 빚을 막겠느냐"고 한양대 원제무 교수는 말한다. 이자 내느라 바빠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환만 거듭될 것이란 지적이다.

공적자금을 찔끔찔끔 뒷북치기로 투입하는 바람에 1백조원 넘게 쏟아붓고도 금융 부실을 해결하지 못한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일시에 충분히 지원해 '클린 컴퍼니'로 새출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식 경영을 도입해야=일을 안해도 정년이 보장되고, 잘 해도 인센티브가 없는 공무원식 경영으론 경쟁력을 갖출 수가 없다. 성균관대 김광식 행정대학원장은 "민간 기업은 적자가 나면 뼈를 깎는 자구노력부터 한다"며 "연봉제·계급정년제·발탁승진제 등 과감한 인사·조직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이와 함께 창의적 아이디어로 고객을 유인하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철도기술연구원 이경철 박사는 "네덜란드·독일에선 한장의 차표로 역에서 버스나 지하철로 바로 갈아탈 수 있고, 기차를 타면서 택시를 예약해 역에 내리면 대기하도록 하는 서비스를 해준다"며 "스페인 마드리드역엔 식물원까지 있다"고 전한다.

"역엔 전화·팩스·컴퓨터 등을 갖춘 비즈니스 룸과 렌터카 코너를 만들고, 기차 안에선 고급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에서 식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자"고 국토연구원 정일호 연구위원은 제안했다.

획일적인 지하철·전철 외에 트램(도로 위의 궤도를 따라 달리는 노면전차)·모노레일 등의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들 교통수단은 지하로 내려가지 않아 편리한 데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관광자원으로서의 활용도도 높다.

"서울·부산의 혼잡한 도심뿐 아니라 전주·경주 등 인구 50만~1백만명 규모의 중도시에 트램을 놓는다면 시가지 전체를 수평 에스컬레이터로 연결하는 효과가 날 것"이라고 양근율 철도기술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말한다. 레저 수요 부응도 과제다. "시속 1백㎞ 정도의 오픈카·칸막이형 열차로 승용차·자전거·스키를 싣고 관광지를 연결하자. 동·남·서해안 일주열차, 제주도 순환열차를 만들고 중앙선 철도 주변의 태백·영주 등 곳곳을 레저단지로 개발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강릉대 최창의 교수)

음성직 전문기자, 대전=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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