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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이영일] 북한은 중국정부의 간섭정책을 수용할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천안함 폭침사건이후 한국 지식인들 가운데는 중국을 마치 북한만을 지원하는 국가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이것은 사실을 잘못 관찰한데 기인한 것 같다. 중국은 언제나 원자바오(溫家寶)총리가 말한 대로 누구 편이 아닌 중국의 국익을 앞세운다. 오히려 천안함 사건으로 북·중 관계는 양자관계에서 심각한 변화를 보였다. 북한도발의 천안함 사건은 두 측면에서 중국을 크게 곤혹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사건발생의 시점(時點)이다. 중국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 온 상해(上海)엑스포 개막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사건이 발생, 자칫 엑스포의 개막과 진행에 큰 위기를 조성할 가능성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한미연합방위체제가 북한을 상대로 국제법상 용인된 자위권을 행사할 경우 중국은 본의 아니게 한반도의 전쟁위기에 휘말릴 수 있었다.

중국의 지도부는 사건 발생 직후부터 이러한 위험요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한편 북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북한으로 인해 중국이 경제발전과 외교적 위상정립에 어려움을 겪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2010년 5월초 후진타오(胡錦燾) 주석은 중국공산당 총서기 자격으로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를 당 대 당 외교형식으로 중국에 초청(호출), 동지로서 극진한 예우를 하면서도 전례 없이 강경한 담판을 벌여 양국관계를 재조정하고 있다.

그간 중국은 북한에 대해서는 양국관계가 냉전형의 동맹이 아닌 국가대 국가관계로 바뀌었다고 하면서도 대내적으로는 혈맹명분하에 경제 원조를 늘리는 한편, 북한정권의 존속과 안전에 각별한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특히 2009년 10월부터는 북한문제와 북핵문제를 분리, 북한정권의 존속에 역점을 두는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북한이 중국식의 개혁개방에 나서도록 설득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번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북한의 행동을 강력히 통제하기 위한 자기요구를 드러냈다.

우선 후(胡)주석은 김정일에게 양국 간의 중요사안(事案)에 대한 사전소통을 요구했다. 이는 앞으로 중요한 문제를 중국과 사전에 협의해서 처리하라는 요구였다. 또 원자바오 총리는 외교적 언사로 중국의 개혁개방을 소개한다고 표현했지만 내용인즉 중국식 개혁개방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한 것이다. 김정일은 이 두 가지의 내정간섭(內政干涉)형 요구를 모두 받아들였다. 북한이 중국의 요구를 이처럼 고분고분 수용하기는 양국역사에서 드문 일이다. 중국이 부단히 요구해 온 중국식 개혁개방을 북한이 따르기로 한 점도 특히 눈길을 끈다.

그간 중국은 북한이 사전협의 없이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핵실험을 단행하거나 미사일을 발사하고 6자회담을 보이콧하는 등 여러 차례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외교적 입지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중국은 ‘책임 있는 강국’이라는 명분 때문에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제에는 동참하면서도 북한이 감당하기 힘든 강경조치를 완화하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북한이 역사적인 혈맹, 양자 간 안보조약을 맺고 있는 중국의 유일한 동맹국이란 점 등을 감안, 모든 문제를 설득과 대화로 풀어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번 천안함 사태에서는 태도를 바꿔 북·중 양자관계를 문제 삼았다. 물론 한국이 조사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북한에 대해 문책(問責)성 조치를 강구한 것이다. 천안함 문제는 중국이 본의 아니게 자칫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을 내포한 위험천만의 불장난이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김정일도 이번에는 중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완전범죄를 목표로 꾸며진 천안함 사고가 북 측의 소행으로 들통이나 독자적으로 뒷감당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김정일은 중국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불어 닥치는 국제정치적 위기 외에도 김정일 자신의 건강위기, 화폐개혁실패에서 초래된 경제위기, 정권승계위기 등 체제의 존속을 위협하는 위기 앞에서 중국의 요구를 마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지켜보아야 할 것은 김정일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긴급대피용으로 중국의 요구를 일시적으로 수용한 것인지 아니면 북한의 앞날을 생각해서 내린 합의인지를 두고 보아야한다. 그러나 중국도 북한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임을 간파하고 조치를 취한 것 같다.

앞으로 북한의 중국과의 사전소통약속이 지켜진다면 추가적인 북한의 대남도발로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는 억제될 가능성이 많고 6자회담재개도 예상된다. 또 서해상에서의 새로운 도발 우려도 줄어들 것이다. 특히 최근 관심을 모으는 개성공단문제도 한국이 폐쇄하지 않는 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과연 중국이 권하는 개혁개방정책을 그대로 따를 것인지는 의문의 여기자 남는다.

북한에는 중국식 개혁개방을 가로막는 권력세습이라는 체제내적 약점이 있다. 권력세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북한주민들을 외부세계의 지식과 정보로부터 완전 차단해야 한다. 둘째로 김일성, 김정일 개인의 우상화를 위해 심각한 수준으로 날조, 왜곡해 놓은 가계(家系)의 역사와 항일투쟁사의 진실노출을 우려한다. 셋째로 정권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령(首領)론을 내세워 혁명혈통(革命血統)을 대대로 전수(傳受)하자면서 전체 인민을 수령을 위해 목숨을 바칠 존재로 규정, 위민(爲民)노선을 부정해왔다. 이 점에서 중국과 북한은 인민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중국공산당은 당 존립의 정당성근거가 무슨 수단을 빌어서라도 인민에게 빵을 주는(黑猫白猫)위민(爲民)통치에 있음을 강조하는데 비해 북한에는 이러한 의미의 인민도, 통치도 없다. 이것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따를 수 없는 북한의 약점이다.

북한은 선군정치를 강조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주변국들을 위협했지만 인민의 생계를 보장할 경제를 만들지 못했다. 이제라도 늦었지만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서둘러야 북한주민들이 아사(餓死)로 내몰리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현재의 난경(難境)에서 벗어나려면 가장 긴급한 것이 핵 포기이며 동시에 선군정치를 끝내는 것이다. 이러한 결단 없이는 중국식 개혁개방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필자는 북한이 하루라도 빨리 중국식 개혁개방을 실천, 북한 동포들이 굶지 않게 되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한다.

급변하는 동북아시아 정치지형 속에서 한중관계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양자관계를 잘 이끌어 가는 데는 노련한 분석과 지혜가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중문화협회 총재 이 영 일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보내드리는 뉴스레터 '차이나 인사이트'가 외부 필진을 보강했습니다. 중국과 관련된 칼럼을 차이나 인사이트에 싣고 싶으신 분들은 이메일(jci@joongang.co.kr)이나 중국포털 Go! China의 '백가쟁명 코너(클릭)를 통해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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