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하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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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1956년 마오쩌둥(毛澤東)은 녜룽전(聶榮臻) 원수를 은밀히 불렀다. “하늘 길을 열어달라”는 당부가 떨어졌다. 중국 최초의 우주기술연구소는 이렇게 태어났다. 연구소만 있으면 뭐 하나, 일할 인재가 없었다. 건국 초기다. 국내 인재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해외 인재와 접촉했다. 핵심 목표는 재미 로켓 전문가 첸쉐썬(錢學森). 미국은 펄쩍 뛰었다. 한 해군 장성이 “5개 사단의 가치와 맞먹는 자다. 차라리 쏴 죽이겠다”며 흥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래도 그는 왔다. 첸보다 한발 앞서 제어공정 전문가 량쓰리(梁思禮), 위성 전문가 왕시지(王希季)도 귀국했다. 그 뒤론 해외 인재가 봇물을 이룬다. 국가 총력전의 결과였다. 재료학 야오퉁빈(姚桐斌), 공기동력학 좡펑간(莊逢甘), 자동제어학 양자츠(楊嘉<5880>) 등이다.

국가도 몸으로 화답했다. 때마침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기간이다. 나라 곳곳이 인재난에 자금난이다. 그래도 연구소에는 사람과 돈이 최우선으로 투입됐다. 국방부는 과학자 30여 명과 우수 대학생 100여 명을 보냈다. 인민군 총정치부도 3000여 명의 간부와 기술자를 파견했다. 공업부는 300여 명의 설계사와 공예기술자를 지원했다. 소련과 동구에 연수단도 보냈다. 미사일·로켓 연구가 본격화되는 순간이다.

당시는 홍(紅·사상)의 시대였다. 전(專·전문지식기술)은 뒷전이다. 이래서는 연구가 안 된다. 녜 원수는 친히 ‘과학 14조’를 기초한다. 핵심은 ▶성과와 인재를 내는 것이 연구기관의 근본 임무다 ▶과학자를 존중하고 보호한다 ▶연구기관은 당내 비(非)과학도의 의견을 존중한다 ▶정치와 학술은 구분한다는 네 가지다. 마오의 동의도 받았다. 파격적인 대우다.

성과가 쏟아졌다. 64년 지대지 미사일 발사, 70년 중국 최초(세계 5번째)의 인공위성 둥팡훙(東防紅) 1호 발사, 80년 장거리 미사일 발사…. 마침내 99년 중국 최초의 우주선 선저우(神舟) 1호가 뜨고, 2003년 최초의 유인 우주선이 날아오른다. 다음은 화성이다. 내년에 쏘아질 잉훠(螢火) 1호가 주인공이다.

어제 나로호 발사가 연기됐다. 여기저기 탄식 소리다. 하나 대수 아니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중국처럼 끈기 있게 집중하자. 하늘 길은 먼저 여는 자가 임자다. 하늘 문이 열리면 미래를 먹여 살릴 사업거리가 하늘처럼 넓게 퍼져 있을 것이다.

진세근 탐사 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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