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안정-기회와 도전<上> 韓美동맹체제 재조정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으로 한·미간의 중요한 쟁점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렇지만 아직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를 남겨놓기도 했다. 이런 기회와 도전의 갈림길에서 한반도 안정을 둘러싼 몇가지 쟁점을 점검하는 기획시론을 마련해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axis of evil)'발언 이후 우여곡절 끝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이 '한·미동맹의 강화''햇볕정책 지속''대화를 통한 대량살상무기(WMD)문제 해결' 등에 합의하고 막을 내렸다. 정상회담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철저한 준비이고, 다른 하나는 정상회담에 대한 양측의 기대수준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다.

2001년 1월 부시 행정부 출범 후 두 달만에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씁쓸한 여운을 남기고 끝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야기된 '혼란'을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진정시키려고 고심했던 것으로 보이며, 미 행정부 역시 부시 발언이 야기한 한반도 문제에 관한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그 결과 양국은 대북정책과 관련해 총론과 각론 모두에 관한 합의를 도출하기보다는 기대수준을 낮춰 총론적인 합의만을 보여줌으로써 긍정적인 평가를 얻게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한·미 양국이 각론부분에 관한 포괄적인 협의를 해나감으로써 향후 제기될 문제들에 관해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다. 특히 한·미동맹의 유지 및 강화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강조했듯이 '1차 과제'다.

'안보는 산소와 같다'는 말이 있다. 안보가 충분할 때는 안보의 중요성을 모르나 안보가 부족하여 전쟁이 일어나면 그때서야 안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한·미동맹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안보의 요체였다. 현 상황에서 한·미동맹이 소멸되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전체가 안보위협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 투자한 외국인들도 무척 불안해 할 것이다. 힘센 미국과 결별한 한국을 주변국이 반갑게 맞아주기 보다는 속인들이 이혼녀 대하듯 깔보기 시작할 것이다. 주한미군이 제공해온 산소를 대체하기 위해 우리는 상당기간 동안 엄청난 방위비를 투입해야 한다. 미국 역시 한·미동맹을 통해 한반도에 안정을 유지함으로써 미국 이외의 나라가 한반도에 대한 전략적 야심을 드러내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깨뜨리는 것을 막고 있다. 따라서 한·미동맹은 미국에도 보탬이 된다. 구한말 청·일전쟁의 예에서 보듯 역사적으로 한반도가 불안정해질 때 주변국 관계도 불안해져 전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았다.

2003년은 상호방위조약을 통해 한·미동맹이 결성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계기로 한·미동맹의 구체적 비전을 정립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비전은 안보 이익의 수렴을 바탕으로 민주적 공감대가 더욱 확대되는 가운데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통일 그리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하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민주적 동반자관계'의 정립이다. 단순한 이익계산에 입각한 동반자이기에 앞서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고 이를 확산시켜야 할 책임을 공히 느끼는 동반자 관계이어야 한다.

따라서 한·미동맹은 한반도에서의 위협을 제어하는 동맹으로부터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할 수 있는 보다 '지역적 차원'의 동맹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동북아 지역적 차원에서 한·미동맹체제를 재조정한다는 것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억지를 위한 한·미동맹체제가 궁극적으로 동북아의 안정에 기여한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북한의 위협이 소멸되더라도 한·미동맹체제는 지역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전제로서, 한반도 평화구축과 역내 안보에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하도록 한·미 모두 중국과의 관계를 증진해야 한다. 그리고 한·미동맹과 양립하는 미·일동맹을 통해 일본이 적절히 '관리'되어 일본의 군사적 역할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가 불식되어야 한다.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양국 정부간, 그리고 우리 정책당국자와 여론주도층간에 한·미동맹의 미래에 관한 유익한 대화가 시작되길 기대해 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