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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교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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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연두교서(state of union adress)란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 대하여 내정·외교의 현황을 설명하고 입법에 관한 구체적인 권고를 시도하는 정기적인 메시지다.

예산교서·경제교서와 함께 3대 교서의 하나이지만 연두교서가 특별히 주목을 받는 것은 그 내용이 의회만이 아닌 미국민과 세계로 향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주요한 외교·내정원칙들 중 상당수가 이 연두교서를 통해 알려졌다.

예를 들어 미국 외교의 원칙이었던 먼로주의(고립주의)는 1823년 12월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의 연두교서를 통해 선포됐고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국제질서에 대한 원칙을 담아 3·1독립만세 운동 등을 촉발한 우드로 윌슨의 14개조 평화안도 역시 1918년 1월 8일 연두교서를 통해 나왔다.

또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41년 1월 역시 연두교서를 통해 ▶언론과 발표의 자유▶종교의 자유▶궁핍으로부터의 자유▶공포로부터의 자유를 내놓았다.

물론 미국의 역대 모든 대통령이 연두교서에 이런 세계적 의미의 원칙들과 외교노선에 대해 언급한 것은 아니다. 평화시에 집권했던 대통령들은 외부보다는 내부의 문제에 더 관심을 쏟았다.

대표적인 예가 빌 클린턴이다. 그는 집권 8년 동안 발표한 연두교서의 대부분을 미국의 개혁과 경제·교육·복지 등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 활용했다. 물론 이는 레이건이 '악의 제국'으로 불렀던 외부의 적, 소련이 소멸한 원인이 컸다.

집권 초 9·11 테러사건을 맞은 조지 W 부시는 미국민에게 다시 외부의 적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그는 2002년을 '전쟁의 해'로 선포했고 지난 1월 29일엔 연두교서를 통해 북한·이라크·이란을 '악의 축'의 국가들로 거명, 관련국 및 주변국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미국의 연두교서가 대외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미쳤던 역사적인 경험들을 상기한다면 부시의 악의 축 발언과 '전쟁의 해' 규정은 너무나 섬뜩하다. 이 때문에 그의 '악의 축'개념에 대해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 조차 지나친 단순화와 공격적인 발상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다. 역대 가장 공격적이고 독선적인 연두교서를 발표했다는 부시의 동북아 순방이 시작됐다. 부시가 순방 후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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