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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稅風 대응 조심조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세풍(稅風)사건의 주역 이석희(李碩熙)전 국세청 차장 검거를 둘러싼 여야의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李씨 검거소식이 알려진 16일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던 한나라당은 17일엔 李씨가 1997년 국세청을 동원해 모금한 자금이 여권에도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역공을 펴기 시작했다. 반면 민주당은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어서 대조를 보였다.

이회창(李會昌)총재 공보특보인 이원창(李元昌)의원은 기자실로 찾아와 "세풍 사건과 李총재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여권 실세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이석희 차장은 국세청장으로 승진하려는 욕망이 컸던 사람으로 경기고 인맥을 통해 정치권에 로비를 했을 수 있다"며 "李씨는 여권 인사인 L·C씨 등과 교류가 잦았다"고 주장했다. L·C씨의 실명을 밝히지 않은 李의원은 "당시 李총재는 (아들 병역문제로) 지지도가 한자릿수를 약간 넘는 정도밖에 안됐으므로 李씨가 오히려 지금의 여권에 더 로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이 그동안 그린 시나리오는 이석희씨와 서상목(徐相穆)전 한나라당 의원, 李총재 동생인 이회성(李會晟)씨 세 사람이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끌어 모았다는 것"이라며 "검찰이 또 이런 식으로 한다면 우리당은 특검을 요구해서라도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공세를 취하는 것은 李씨 검거에 위축된 모습을 보일 경우 李총재에게 쏠리는 의혹이 확산될까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한 당직자는 밝혔다.

동시에 한나라당 관계자는 "정부가 주미 대사관에 '이석희 전담반'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7개월 전에 李씨의 소재 파악을 해두고도 타이밍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방치했다고 들었다"면서 "이번의 경우 정부쪽에서 李씨 관련 정보를 미국측에 제공해 체포토록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정치적 논란을 초래할 만한 대야 공격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이낙연(李洛淵)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이상한 말을 하면 할수록 李총재에 대한 의심만 키울 것"이라면서도 세풍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李총재나 한나라당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李대변인은 "李씨 체포를 정략에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현미(金賢美)부대변인은 "그동안 총풍(銃風·북한의 판문점 총격 유도사건)사건 등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모두 정쟁(政爭)거리로 바뀌어 사건의 본질이 흐려졌다"면서 "이번에도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사실이 확인되면 이회창 총재는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고, 한나라당 내부에선 심각한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큰데 우리가 나서면 될 일도 안된다"고 속내를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민주당에선 "이석희씨가 전모를 자백할 가능성이 크지 않고 수사를 통해 우리가 큰 득을 볼 가능성도 그렇게 크지는 않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일각의 '기획체포설'에 대해선 "미 연방수사국(FBI)이 한국의 파출소냐(이낙연 대변인)"면서 펄쩍 뛰었다. 민주당은 '정보제공설'에 대해서도 "미국 수사기관이 우리가 하라면 그 말대로 따르느냐"면서 "정부는 한·미간 범인 인도조약에 따라 신병인도를 요청했을 뿐이고 李씨는 전적으로 FBI가 독자적으로 수사해 검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측은 지난해 5월 하순에도 FBI가 李씨를 검거하기 위해 은신현장을 수색했던 사실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민주당 김근태 고문은 "세풍 사건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수사를 위해 여야가 특검제를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상일·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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