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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장관·총장 마당극에 출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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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우리 사회의 도덕성 회복을 위해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전직 장관·원로 철학교수와 검사 등이 마당극에 출연한다. 출연진은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와 황경식(서울대)·엄정식(서강대)씨 등 철학과 교수, 이명현(서울대·철학)·박영식(광운대 총장)씨 등 전직 장관, 강지원 서울고검 검사 등이다.

이들은 22일 오후 4시 정동 세실극장에서 공연되는 '붉은 뺨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마당극에 출연한다.

제목은 철학자 니체가 인간을 '붉은 뺨의 야수'라고 한 데서 따왔다. 대본은 한신대 김광수(철학) 교수가 썼다.

15일 오후 방배동 철학문화연구소 회의실. 연습을 위해 모인 이들은 처음에는 다소 근엄하고 조금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김광수 교수가 "마당극은 관객과의 대화이자 사회에 대한 풍자"라며 "전문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어설픈 연기에 관객은 박수를 보낼 것"이라고 말하자 아마추어 배우들의 긴장은 풀리기 시작했다.

김태길 명예교수는 "배우로 데뷔한다는 것 자체로 흥분된다. 이번에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다른 연극에도 출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마당극은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상임대표 김태길) 창립 1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우리 사회가 경제성장을 지나치게 추구한 결과 현재의 아노미를 초래했고, 이것이 도리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게 됐다는게 이들의 생각이다.

마당극은 주인공인 부름꾼(황경식 교수)이 도덕성 회복을 위해 '붉은 뺨'을 가진 사람 열명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부름꾼은 선거를 앞둔 정치인 권모술(이명현 전 장관), 금전 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조졸부(이형모 시민의 신문 사장), 늘 대세만 좇는 들러리(정대현 이화여대 교수), 행동하지 않고 말만 살아있는 임만살(손동현 성균관대 교수), 세상을 냉소하며 술만 마시는 고주망(최충옥 경기대 교수) 등을 차례로 만나면서 붉은 뺨을 찾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당극의 끝부분에서는 백성의 염원을 아뢰는 춤꾼 선녀(이애주 서울대 교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늙은 현자(賢者·김태길 명예교수)를 만나게 된다. 선녀가 노인에게 부조리한 우리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노인이 하나씩 답변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깨끗한 사회를 만들자고 목청을 높여온 손봉호 교수가 사기꾼으로, 강검사가 조폭으로 등장하는 등 캐스팅 자체도 다분히 역설적이고 풍자적이다. 김광수 교수는 "지식인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의 후안무치를 반성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김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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