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게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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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돌프 히틀러가 희대의 독재자이자 살인마이긴 했지만 금욕적이고 돈 문제에 깨끗했다는 조작된 '신화'를 아직도 사실로 믿는 이들이 꽤 많다고 한다. 여기엔 그가 고기를 꺼려한 채식주의자였다는 점도 작용한 것 같다.

히틀러는 고기 수프를 '시체 차(茶)'라고 부르며 경멸했고, 고기를 먹는 부하들을 대놓고 조롱했다 한다. 생선도 상당히 싫어했다. 한 동료가 식당에서 게 요리를 주문하자 '옛날에 어떤 가족이 게를 잡으려고 죽은 할머니 시체를 냇가에 두었다더라'는 꾸며낸 얘기를 들려줘 밥맛 떨어지게 만들었다는 일화도 있다. 통상 그의 아침식사는 우유 두 잔과 비스킷 열개, 초콜릿 반쪽이었다.

우리 설 연휴이던 지난 11일 사망한 히틀러의 마지막 개인비서 트라우들 융에(81·여)도 죽기 얼마 전 발간된 자서전에서 비슷한 증언을 했다. "히틀러는 으깬 감자를 즐긴 채식주의자였으며, 요리사가 영양을 보충해 주려고 음식에 몰래 고깃국이나 지방을 섞으면 화를 내고 복통을 앓기도 했다"는 것이다.

"유쾌한 보스이자 아버지 같았던 히틀러에게 매료됐었다"고 융에도 고백했듯이 히틀러는 여성을 끄는 재주가 있었던 듯하다. 특히 자신에게 도움을 줄 만한 여성을 만나면 우선 목소리부터 사근사근하게 변했고, 상대로 하여금 히틀러가 오직 자신에게만 정신을 쏟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만들어 매료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히틀러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더러운 부를 쌓은 권력형 부정축재자였다. 그가 동원한 수법은 공금유용·횡령, 부동산 차명구입, 환율차익 챙기기, 탈세, 불법대출, 기부금 착복, 예술품 강탈 등 다양다기했다. 자신이 별장을 지으려고 점찍은 곳의 땅을 팔지 않는다는 이유로 땅주인을 다하우 강제수용소에 보낸 적도 있다. 히틀러라는 '몸통'을 위해 일한 대표적인 '깃털'은 은행원 출신 막스 아만과 '국정보도국 사진담당'이던 사진사 하인리히 호프만이었다(슈바르츠벨러 저·이미옥 역 『히틀러와 돈』).

설 연휴 기간 친척들이 모이면 으레 '게이트'얘기가 등장했다. 그래도 한국은 집권기간 중 부패게이트가 폭로되는 나라니까 역시 히틀러시대 독일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게이트란 단어가 신문지상에서 아예 사라져 준다면 더 좋겠지만.

노재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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