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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순식간에 전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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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7보 (111~127)]
黑. 송태곤 7단 白.왕시 5단

8강전이 열린 울산의 현대호텔 부근은 온통 현대중공업 세상이다. 이곳에서 조금 나가면 동해바다가 나오고 차를 타고 조금 더 가면 고래로 유명한 방어진이 있다. 전 같으면 그곳에 가서 고래고기와 소주 한잔을 즐길 여유가 있었다. 바둑대회를 꾸려가는 일행도 몇명 안 돼 어두운 바닷가에서 그렇게 승부의 여운을 나눌 수 있었다.

지금은 수십명이 움직인다. 기획.진행.방송.인터넷.해설자 등 사람도 사람이지만 짐도 산더미다. 한국과 중국이 4대4로 맞붙은 8강전, 우승에 목마른 중국팀은 바다가 어디냐고 묻지도 않는다. 해설자로 내려온 조훈현9단만이 옛 생각이 나는지 홀로 방어진 타령을 한다.

판 위에선 매서운 변화가 연속으로 전개되었으나 송태곤7단의 강수를 왕시5단이 잘 받아내며 우세를 유지하고 있다. 노트북이 줄지어 늘어선 인터넷 해설실에서 울산 출신의 양재호9단이 112를 바라보며 '참고도'를 그리고 있다. 흑1로 젖히면 백2로 끊고 그리하여 6까지 이곳의 백은 안정된다. 그 다음 8로 급소를 찔러간다는 구상이다. 균형잡기에 주력하는 왕시가 선택할 만한 차분하고 견실한 흐름일 것이다.

그런데 왕시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114의 최강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창호처럼 점잖은(?) 것으로 알려진 왕시의 내부에도 맹수 한 마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왕시는 귀 쪽의 백 대마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무릅쓰고 흑의 좌변을 초토화하며 여기서 아예 뼈를 부러뜨리려 한다. 그러나 127의 일격이 쿵 떨어지자 백 대마가 졸지에 흔들거린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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