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갈등 외교로 풀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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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한반도 상황이 매우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다.'악의 축' 발언 이후 급격히 고조된 북·미간 긴장과 대립이 이제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간 외교갈등과 우리 국민 사이의 의견대립 양상으로까지 변모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지식인·시민들까지 부시의 발언을 놓고 반발하는 측과 인정하는 측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모습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건전한 한·미동맹의 발전을 위해 모두 바람직스럽지 않다.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입장이 다를 수 있고, 목표가 같다 해도 집행하는 정책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점을 상기하면서 한국과 미국·북한 모두가 이 문제를 냉정한 현실인식 하에서, 사실에 근거해 반응하고 문제를 풀어나갈 것을 우리는 강조하고자 한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의 진정한 목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미국 및 동맹국의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북한에 대한 경고라는 것이 미국측의 설명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미국이 누구를 침입할 준비가 돼 있다거나 대화에 나설 의사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단지 특별히 '악의 축'이라는 극단적인 수사를 동원한 것에 대해서는 그럴 만한 증거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미국이 말하는 그럴 만한 증거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그만큼 한·미간 대북정보가 공유되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뜻밖의 발언으로 세계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특히 한반도 정세를 전쟁국면 분위기로 몰아간 데도 문제는 있지만, 우리 정부는 사태가 여기까지 오도록 무엇을 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우리 당국자들은 미국에서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 동맹국인 한국과 미국간에 현격한 시각차가 있다는 주장은 여기에 근거하고 있다. 또 이러한 판단은 한·미간 정책공조 및 정보공유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를 가능케 한다. 한·미간 정보 공유가 부실했다는 것은 이 정부의 대미정책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 화해협력에 몰두하다가 햇볕정책의 또다른 축인 안보를 등한시 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이, 한국과 동맹국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문제에 대해 행한 강한 경고를 둘러싸고 보이는 한·미간 갈등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다행히 미국과 북한은 아직도 서로 대화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극단적 성명전과 행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남북문제를, 한·미외교를 이념이나 바람몰이로 그르쳐선 안된다. 실사구시적 접근으로 북한 위협의 정체가 무엇인지 사실확인부터 해야 한다. 그다음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섣부른 주의·주장으로 반미감정을 고취해서도 안되고 국내적 정치상황을 국제적 문제로 덮으려 해서도 안될 것이다. 또 근거없는 음모론으로 한·미 서로의 국익을 해치는 잘못을 저질러서도 안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공조가 공고함을 국민 앞에 확실히 보여줘야 하고 그동안 쌓인 오해와 견해 차이가 있다면 이를 해소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안보와 국익이 직결된 문제를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우(愚)를 저지르지 말고 치밀한 외교전략으로 풀어가는 지혜를 갖기를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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