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스스로 생각·창조하게 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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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양자컴퓨터가 개발되면 컴퓨터 스스로 생각하고 학습하면서 심지어 창조적인 일까지 하게 됩니다. ‘전자 스핀’의 수명을 늘림으로써 그런 양자컴퓨터의 개발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 IBM 알마덴연구소의 양시훈(42·사진) 박사의 소감은 소박했다. 그는 전자 스핀의 수명을 종전보다 100만 배 이상 늘리는 첨단기술을 개발해 영국의 세계적 과학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의 7일자 온라인 판에 발표한 논문의 제1 저자 둘 중 한 사람이다. 그와의 국제전화 연결은 휴일인 5일(현지시간) 자정 무렵이었다. 연구실에서 실험기기와 씨름하고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 가장 존경스러운 위인은 아인슈타인과 뉴턴이었다. 그가 꿈꿔 온 과학자의 모습에 한 걸음씩 다가서는 듯했다.

양 박사는 1998년 서울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박사후 과정(포스닥)을 밟으려고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으로 옮겼다. 이제 세계적 전자 스핀 연구그룹이 있는 IBM 알마덴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자리잡아 굵직한 연구 성과를 잇따라 내놓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연구논문은 벌써 60여 편에 이른다. 그가 2004년 발표한 산화마그네슘 관련 논문은 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발표된 논문 중 가장 많이 인용된다. 누적 인용 횟수가 677회에 이른다. 양 박사는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학부부터 박사과정까지 마친 토종 과학자다.

- 전자 스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박사학위 논문이 스핀과 관련된 주제다. 그러나 본격적인 연구는 미국에 와서다. 방사광 가속기 같은 큰 시설이 잘 돼 있어 스핀을 면밀히 측정하며 연구할 수 있었다. 스핀이 양자컴퓨터의 실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 같아 보람이 크다.”

- 전 세계 하드디스크의 헤드(정보를 읽어내는 부분)를 바꾼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는데.

“2004년에 발표한 논문이다. 산화마그네슘을 이용하면 스핀을 훨씬 효과적으로 정렬해 주입할 수 있는 소자를 세계 처음으로 개발했었다. 세계 학계와 산업계의 반응이 컸다. 관련 발표를 하는 학술대회장이 매번 가득 찼다. 자기 메모리에 응용할 수 있는 연구도 한창이다.”

- 산업계에 미친 영향은.

“당초 그 연구 결과를 차세대 반도체인 자기메모리(M램)에 활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하드디스크가 정보를 정확하고 빠르게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기술은 지금 대부분의 하드디스크에 쓰인다.”

- IBM 알마덴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뒤 더욱 많은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다.

“내가 속한 연구그룹은 스핀 분야의 최고봉이다. 그룹장인 스튜어트 파킨 박사는 오늘날 하드디스크가 대용량으로 급속하게 이행하도록 기반기술을 닦은 과학자다. 최근 하드디스크 관련 노벨상을 두 사람이 받았는데 파킨 박사의 공헌이 없었다면 그들의 연구 성과가 빛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세계적 과학자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내 성과도 잘 나오는 것 같다.”

- 파킨 박사는 누구인가.

“90년대에 하드디스크의 용량이 급속히 늘어난 일을 기억하는가. 거대자기저항(GMR)이라는 기술에 힘입은 것이다. 이와 관련한 기초기술은 다른 사람이 개발해 노벨상을 탔지만 그 응용기술 개발에는 파킨 박사가 절대적 역할을 했다. IBM이 하드디스크 관련 핵심 특허기술을 대부분 갖고 있는데 파킨 박사의 업적이다.”

- 전자 스핀을 이용한 반도체를 만들면 어떤 효과가 있는가.

“첫째 양자컴퓨터에 이용하면 처리속도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진다. 둘째는 아직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완전히 극복되지 않았으나 자기 메모리, 레이스트랙메모리의 경우 정보 저장과 읽는 속도를 기존 비휘발성 메모리에 비해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

- 한국에 와서 연구할 생각은.

“IBM연구소는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기초연구를 하는 기업연구소다. 이곳만큼 자기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이 드물다. 이번 연구성과도 한 대에 수천만 달러 하는 최고급 장비가 뒷받침해줬기에 가능했다. 한국도 과거에 비해 연구 환경이 아주 좋아졌고, 투자도 많이 해 좋은 연구성과가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차 한국에서도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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