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수위 가계대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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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가계대출을 둘러싼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에 제시된 통계들은 가계대출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융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이 일반대출이나 신용카드·할부금융 등 여러 형태로 금융기관에서 빌려쓴 금융부채는 지난해 9월 말 현재 3백16조3천억원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말(2백11조2천억원)에 비해 50% 가량 늘어났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가계부채는 올해 말 4백30조원을 넘어서고 2년 뒤에는 5백조원선에 접근할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부채가 이처럼 급증한 것은 기본적으로 개인들의 씀씀이가 커진 탓이다. 지난해에는 그나마 개인들의 소비나 투자가 경기를 지탱하기도 했다.
문제는 빚이 늘면 부실도 따라 늘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돈을 빌리지 못하면 씀씀이가 늘어날 수 없다는 점에 비춰보면 은행이나 신용카드회사 등 금융기관들의 책임이 크다. 실제로 지난해 말 현재 일반은행의 가계대출 규모는 1백28조원선으로 1년새 42%나 늘어났다. 신용카드 사용실적은 4백47조원으로 무려 88%나 늘어났다.
부실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신용카드 채권의 연체율은 지난해 9월 말 현재 8.6%로 은행대출에 비해 여섯배를 웃돌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신용불량자가 2백45만명을 넘어섰고 급기야 카드 빚을 못 이겨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금리가 다시 오르고 부동산 거품이 꺼진다면 개인파산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정부는 올 들어 가계대출이 많은 은행에 떼일 경우를 대비해 충당금을 더 많이 쌓도록 하고 신용카드 발급기준을 강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가계대출 부실화가 제2의 금융위기를 초래하지 않도록 서둘러야 할 대책들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돈이 가계대출보다 설비투자 등 더욱 생산적인 곳으로 흐를 수 있도록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노사관계도 안정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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