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의 ‘지도자 크기가 나라 크기다’] 부활한 노무현의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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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민심이 정말 무섭죠?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모두 사람들의 힘에 두려움을 느꼈을 겁니다. 이번 선거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선거로 기록될 것입니다. 2006년 지방선거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때는 선거 전날에 이미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너무나 비현실적인 결과를 예고하고 있어서 설마 하고 판정을 유보했었을 뿐입니다. 이번에는 전날까지도 이런 결과를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런 결과를 예측했다는 누군가가 여기저기서 나오겠지만 과연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안희정, 이광재, 이광재, 김만수(왼쪽부터)

정당의 희비와 상관없이 이번 선거에서 세 가지 희망을 봤습니다. 첫째는 디지털 세대가 ‘투표’의 힘을 처음으로 실감한 것입니다. 촛불집회나 시위보다 투표가 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1960년 3·15 총선, 85년 2·12 총선, 그리고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젊은 유권자들은 선거혁명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25년마다 그런 일이 있었더군요. 50년 전의 세대가 ‘4·19세대’로 불리고, 25년 전의 세대가 ‘386세대’로 불리며 한국 사회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처럼 디지털 세대도 이번 선거의 성취감을 바탕으로 그들의 시대를 열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40대 지도자들의 약진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송영길 인천시장, 이광재 강원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모두 40대입니다. 미국의 대통령과 영국의 총리가 40대인 점을 생각하면 늦은감은 있지만 그나마 다행입니다. 디지털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젊은 지도자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이제는 30대에서도 정치 지도자가 나와야 하고 나올 수 있습니다. 기득권에 도전하는 정신과, 대중에게 ‘꿈’을 말하는 젊은 정치인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 정치권의 세대교체도 빨라지겠지요.

셋째로 그런 점에서 안희정·이광재 두 젊은 정치인이 정치 지도자로 떠오른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들은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아들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듯 이들에 대한 평가도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당선이 정치권에 던진 메시지는 강렬합니다. 이들은 여러모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닮았습니다. 이들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17년 전에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듭니다. 지방의 시대, 분권의 시대, 균형발전의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습니다. 그 꿈은 강원도지사, 충남도지사, 그리고 김두관의 경남도지사 당선과 김만수 부천시장 당선자 등 적잖은 기초단체 선거 승리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비록 노무현은 부산시장이 되지 못했지만 그의 정치적 아들들이 그 꿈을 대신 이루었습니다.

안희정·이광재 두 사람의 고향은 한국 정치의 변방(?)입니다. 그들의 고향은 충남과 강원입니다. 한국 정치의 양대 세력인 영남과 호남도 아니고 수도권도 아닌 곳이지요. 그들은 노무현이 부산시장에 도전했듯이 그렇게 고향 도지사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고향 사람들에게 ‘변방의식’을 끝내자고 선언합니다. 이광재는 강원도민들에게 “강원도도 대한민국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10년 뒤에는 강원도에서도 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라고 강원도의 ‘꿈’을 팔았습니다. 안희정도 “김종필의 빈 자리를 메울 충청의 새로운 대표선수가 되겠다”고 당당히 선언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충청이 힘 있는 세력에 빌붙어서 생존을 도모하는 2등, 3등의 변방의식을 버리지 않으면 충청의 미래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기존의 정치 지도자들이 지역주의에 푹 빠져 있는 것과 비교해 본다면 이들의 기개는 분명 신선한 것입니다. 이들은 패배주의, 기회주의, 변방의식, 비주류 의식을 깨는 도전을 통해 기득권의 벽과 보수의 벽을 돌파했습니다. 이것이 노무현과 이들이 다른 정치인과 달랐던 점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이 노무현과 닮은 점은 도전에 나설 때 유·불리를 따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중의 힘을 믿고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나섰던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들의 진정성을 충남과 강원도민들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누구도 그들처럼 ‘꿈’을 말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꿈, 원칙, 철학을 갖고 싸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요즘 이런 정치인들 보기가 어디 쉽습니까? 지도자로서 첫발을 내디딘 그들이 노무현을 뛰어넘어 좋은 정치인으로 커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정치컨설팅 ‘민’대표

6·2 지방선거에서 부활한 노무현 사람들

안희정(46) 충남지사 당선자=노무현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사무국장(1993), 노무현 대통령 후보 정무팀장(2002),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정무팀장(2002∼2003)

이광재(45) 강원지사 당선자=노무현 국회의원 비서관(1988),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기획팀장(2002), 노무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2003)

김두관(51) 경남지사 당선자=노무현 대통령 후보 경남선대본부장(2002), 노무현 정부 행자부 장관(2003), 노무현 대통령 정무특보(2005)

김만수(46) 부천시장 당선자=노무현 대통령 후보 공보지원팀장(2002), 노무현 청와대 춘추관장(2003), 노무현 청와대 대변인(200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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