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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점 드러난 '정부 산하기관 임원 공모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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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최근 재정경제부 관료 출신 후보들의 동반사퇴로 파문을 일으켰던 통합거래소 초대 이사장 후보 추천이 7일 우여곡절 끝에 일단락됐다.

이번 이사장 공모 파문은 후보사퇴 압력설, 특정 정치인 내정설 등이 나돌면서 현행 공모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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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공모제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공모제가 지난해 4월 도입돼 아직 시행 초기단계인 데다 법적으로 공모제를 거쳐 뽑는 정부 산하기관장만 420여명에 이를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공모제 자체도 태생적으로 이런저런 문제를 안고 있다.

◆ 추천위원 절반은 공개돼=건설교통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강동석 사장 후임을 뽑기 위해 지난 1월 14일 열린 한국전력 사장 추천위원회 첫 회의에서 김성기(서울대 교수)위원은 회의 초반 공고안의 문구를 고치자고 주장했다. "비상임 이사들의 명단이 이미 공개돼 있어 이대로라면 상당히 많은 연락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위원의 구분 없이 그냥 '사장추천위원회'로 하는 것이 좋겠다."

사장 공모 공고안은 애초 '비상임 이사와 민간위원으로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돼 있었다. 비상임 이사는 공개돼 있는 터라 비상임 이사가 사장추천위원이란 사실을 밝히면 그들에게 온갖 로비가 집중될 판이었다.

그러나 공고 문구를 바꾸더라도 시험출제위원이자 면접관격인 추천위원 노출은 피하기 어렵다. 정부산하기관관리법이나 정부투자기관관리법은 추천위원의 50% 안팎을 비상임 이사로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위원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간 추천위원은 이사회가 뽑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 산하기관 사장추천위는 정부가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이사회 멤버인 비상임 이사, 이사회가 뽑는 민간위원으로 구성돼 정부가 원격제어할 수 있는 구조다.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산하기관 인사에 개입할 수 있는 셈이다.

◆ 3~5배수 추천도 문제=권용준 통합거래소 후보추천위원은 파문 직후 "6명의 후보 중 1명만 선정해 설립위원회에 올릴 예정이었으나 재경부는 적어도 3명을 올리는 것이 관례라면서 고집을 피워 3명으로 선정했다. 6명의 후보 중 3명을 올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된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5배수 추천까지 등장했다. 면접 대상자가 4~5명에 불과한데 3명을 추천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5명을 추천하는 것은 추천위 역할을 왜소하게 만들 수 있다.

◆ 유능한 사람 지원 꺼리기도="공모해 보니 60~70점 정도 되는 인사가 온다. 그런데 아주 우수한 분, 모셔야 할 분들을 못 모시는 경우가 있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이 지난 5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공모제의 단점을 거론하며 한 말이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기관장은 일반 기업보다) 매력적이지도 않고 월급은 적으면서 무한정 책임에 시달려야 한다"며 "개인적으로 (통합거래소 이사장 추천 과정에서) 민간 쪽 2~3명을 접촉했지만 옛날과 달리 인기가 없다"고 말했다.

후보자 자격요건이 구체적으로 명기되지 않아 정작 실력이 있는 후보자들은 지원하지 않고 '정치력이 있는' 사람들만 몰려든다는 지적도 있다.

허귀식 기자

*** 추천위원 해보니…

한국전력 사장추천위원 등을 역임한 김용구(51)미래경영개발연구원장은 공모제가 엘리베이터적 인사시스템(한번 시험에 합격하면 평생 보장받는 인사체계)을 없애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추천위원회가 좀 더 개방성.전문성.다양성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 부적격자 가려내는 데 유리=추천위가 최적임자를 가려내기는 어렵다. 기업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1박2일 정도의 시간을 주고 평가한다. 사장추천위가 30~40분의 면접으로 사장 지원자들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적합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추천위원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행 공모제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절반 정도 추려내기에는 좋지만 최적임자 한 두명을 골라내는 데는 제약이 있다.

◆ 계속 보완해야=기업에서도 인사시스템이 정착하는 데 4~5년이 걸린다. 공모제는 한국 사회의 엘리베이터적 인사를 없애고 다음 단계로 갈 때 새로운 시험을 받게 하며 스스로 학습할 기회를 갖도록 한다는 점에서 방향이 맞고 시너지도 있다. 문제가 있으면 보완하면 된다.

사장추천위의 모태인 사외이사 충원 시스템부터 다양성과 개방성.전문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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