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저 효과 가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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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엔저(低)효과가 일본 기업들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내 수요 부진과 수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던 일본 업체들이 엔화 약세에 힘입어 수익성이 크게 향상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엔화가치는 일본 경제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판단에 따라 39개월 만의 최저치인 달러당 1백35엔선에 근접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중순과 비교하면 거의 15% 가량 절하된 것이다.

지난 25일 일본 주요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지난해 10~12월 실적을 발표한 소니의 경우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보다 9.6%나 늘어나 11억8천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세일시즌에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2의 판매가 호조를 보인 데다 엔저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라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엔저 혜택은 자동차 업종에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일본 3위의 혼다자동차는 최근 2001회계연도(2001년 4월~2002년 3월)의 영업이익이 5천8백억엔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수치는 전년보다 43% 늘어난 것인 동시에 창사 이래 최대다.

미국 메릴린치증권의 자동차담당 애널리스트인 나카니시 다카키는 내년 3월까지 엔화가치가 달러당 평균 10엔 정도 떨어진다면 일본 자동차업계는 앉아서 4천5백억엔(33억5천만달러)의 추가 영업이익을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

ING베어링증권은 일본 1위인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엔화가치가 달러당 1엔 떨어질 경우 2백억엔의 영업이익이 추가될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엔저를 활용, 미국 시장에서 무이자 할부판매 등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영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그동안 소홀히 했던 연구.개발(R&D)투자를 늘리고, 엔화가 다시 강세로 돌아설 경우를 대비해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최근의 엔저에 대해 일본 자동차업계 경영진들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 후지오 도요타자동차 사장은 "우리는 엔화가치 하락을 환영하지 않는다. 엔화가 달러당 1백10~1백20엔 사이에서 움직이는 게 좋다"고 그는 말했다.

아메미애 고이치 혼다 사장도 "환율은 안정된 게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기업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는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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