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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샛별] 1인 밴드 ‘에피톤 프로젝트’차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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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인터넷을 통해 데뷔한 ‘에피톤 프로젝트’는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 그의 곡 ‘그대는 어디에’ 등이 삽입되면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강정현 기자]

그는 검은 뿔테를 걸치고 있었다. 얼핏 고시생의 얼굴이 스쳐갔다. 1인 프로젝트 그룹 ‘에피톤 프로젝트’의 차세정(26). 갓 정규 1집 앨범을 발표한 이 싱어 송 라이터는 마치 고시 준비하듯 음악을 파고드는 중이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논리적으로 정리해 가며 작곡을 익혔다”고 했다.

‘음악 고시’를 치르는 그의 ‘법전’은 가수 윤상과 토이(유희열)·015B(정석원)의 음악이다. 사춘기 시절 이들 음악에 감전됐고, 스무 살 무렵부터 무작정 이 뮤지션들의 멜로디와 리듬·화성 등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음악 공부라곤 피아노 학원 몇 달 들락거린 게 전부인 데다, 전공(사회학) 역시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궁금한 건 끝까지 파헤쳐야 하는 성격”인 탓에 불쑥 음악에 발을 디뎠다.

“컴퓨터에 윤상 등의 음악을 분석해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컴퓨터 작곡을 알게 됐고 화성학 이론도 독학했죠.”

작곡은 그에게 일종의 습관이다. 떠오르는 멜로디를 컴퓨터에 정리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만든 자작곡이 하드디스크 분량 1 테라바이트(1024기가바이트)를 넘는다고 한다.

“마치 사회과학을 하듯 분석적으로 음악을 공부했죠. 이제야 작곡 노하우를 좀 알 것 같습니다.“

실제 대중음악 무대엔 엉뚱한 방식으로 뛰어들었다. 2005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재미 삼아 올린 곡이 급속도로 입소문을 탔다. 방에서 혼자 연주하고 녹음한 ‘두 남녀의 대화’란 곡이었다. 이후에도 ‘싸이월드 스테이지 베스트 초이스(2007)’ 등에 입상하며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다.

“작곡에 필요한 장비를 사려고 인터넷 콘테스트에 나갔어요. 반응이 급속도로 와서 놀랐죠.”

그의 음악에선 윤상이나 토이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감상적인 멜로디와 일렉트로닉 사운드 등이 닮았다. 자작곡을 객원 보컬이 부르는 방식도 비슷하다. 그는 “하루빨리 내 스타일과 정체성을 찾는 게 숙제”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대중을 파고드는 속도는 선배 뮤지션을 넘어설 기세다. 지난달 발매된 1집 ‘유실물보관소’는 20여일 만에 1만장이 팔렸고, 4~6일 서울 영등포 CGV아트홀에서 열리는 단독 콘서트(문의 1544-1555)도 매진이 임박했다.

그는 곡뿐 아니라 노랫말도 직접 쓴다. 아찔한 감성을 담아낸 가사가 멜로디를 단단히 감싼다. 이를테면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노래. “나 그대가 아프다. 나 그 사람이 미안해. 나, 나 그 사람이 아프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언어와 음악이 살을 비비는 소리, 그의 음악도 이 어름에 있겠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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