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재수생 힘겨운 '내공' 쌓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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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는 2월 한양대 공대를 졸업하는 金모(27)씨. 지난 연말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다섯곳에 입사 지원서를 냈으나 컴퓨터에 능통하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고배를 마셨다. 회사들이 "비슷한 조건이면 컴퓨터와 영어가 월등한 사람을 뽑겠다"고 얘기한 것이다.

金씨는 이달 초 서울 강남의 한 컴퓨터학원에 등록해 하루 8시간씩 6개월 과정에 다니고 있다. 한달 수강료만 1백만원이다. 金씨는 "취직만 된다면 비싼 수강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대졸취업 희망자(전문대 포함)는 45만여명. 그러나 일자리는 6만여개에 불과해 졸업자의 85%가 실업이나 반(半)실업 상태다. 이에 따라 대학을 졸업한 취업 재수생들이 갖가지 방식으로 눈물겨운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우선 컴퓨터프로그래머.소비자분석사.컨벤션기획사.투자상담사 등의 전문 자격증을 따기 위해 전문학원에서 취업과외를 받는 취업 재수생들이 많다.

사회조사분석사 준비 과정을 개설한 서울 동대문구 M학원 관계자는 "최근 대졸 수강생들이 20% 증가했다"며 "자격증을 딴다 해도 그 자격증만으로는 바로 취업을 할 수 없는데도 불안한 마음에선지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컴퓨터 국제공인 자격증반을 개설한 D사측은 "최근 2~3개월 사이에 수강생이 1천명에서 1천2백여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아예 경력을 쌓기 위해 해외로 떠나거나 적은 보수를 받고 인턴으로 일하는 대졸자도 적지 않다.

올 2월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하는 李모(24.여)씨는 지난해 말 외국계 기업 서너군데에 지원했으나 실패한 뒤 현재 미국 동부지역 병원의 자원봉사자 모집에 지원서를 낸 상태다. 李씨는 "돈이 들더라도 외국에 나가 경험을 쌓는 게 구직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올 2월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는 吳모(24.여)씨는 외국계 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吳씨는 "한달에 40만원 받지만 경력을 쌓아야 취직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피부과.성형외과에는 면접에서 떨어진 취업 재수생들이 찾아오고 있다. 서울 강남구 S클리닉 장승호(張丞鎬)원장은 "인상을 좋게 하기 위해 이마를 넓히거나 흉터를 제거하는 수술 등을 받으러 오는 대졸자가 하루 5~6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취업 재수생들의 초조감을 노린 사기까지 등장했다. 정보통신부 지정 공식학원이라고 속인 뒤 취업 재수생들을 대상으로 수억원대의 수강료를 챙긴 혐의로 서울 K컴퓨터학원 대표 尹모(29)씨 등 2명이 최근 경찰에 구속됐다.

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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