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작가 김의찬·정진영씨 결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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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두 남녀가 있다. 이들의 직업은 상상 속의 인물을 현실로 재현하는 것. 남자가 형태를 만들면 여자는 정신을 불어넣었다.

소심하고 마음 여린 사위(박영규), 고스톱이 유일한 취미인 장모(선우용녀), 끝없는 식탐을 자랑하는 소방관(노주현), 인자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할아버지(신구)…. SBS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인물들은 모두 그렇게 탄생했다.

7년째 '시트콤' 장르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 김의찬(30.사진(左)).정진영(33)씨.

일 궁합이 좋으면 사랑 궁합도 잘 맞는걸까. 이들이 최근엔 결혼이란 걸 결심했다. 그것도 '웬만해선…'의 마지막 방송일인 2월 22일과 겹치는 날이다. "우연이에요. 막연히 결혼은 금요일 저녁에 해야겠다 싶어서 그날로 정했는데 뒤늦게 마지막 방송날이라는 걸 알게 됐죠. 어쩌면 이것도 운명인가요?"

작가 공채 시험에 똑같이 10분 지각을 하고 코미디 작가 10여명 중 둘만이 같은 프로그램에 배속된 걸 보면 우연이 아닌 운명같기도 하다. 시트콤 작가의 독특한 작업 시스템도 둘을 묶는 데 한몫했다.

시트콤은 여러 명의 작가가 아이디어 선정에서부터 대본집필까지 공동으로 참여한다. 자연 둘 사이가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1995년 SBS 공채 작가로 뽑혀 'LA아리랑''남자 셋 여자 셋''순풍산부인과''웬만해선…' 등 시트콤 드라마에서 잔뼈가 굵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엽기''변태'적인 특징을 실감나게 뽑아내 시청자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한국적인 시트콤을 자리잡게 한 주인공들이다.

그 비결은 뭘까. "모두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과거의 경험들과 식구들의 일상 생활, 주변 사람들을 탐구해 만들어낸 결정체라고나 할까요."

두 사람의 말은 다시 이어진다. "서로 모자라는 부분을 정확히 채워줬어요. 한 사람이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던지면 다른 한 사람이 그걸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죠."

오는 2월 '웬만해선…'을 마친 후 두 사람은 결혼과 더불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지난해 TV 만화 '탱구와 울라숑'의 기획자로 데뷔한 김씨는 애니메이션에 좀 더 힘을 집중할 계획이다. 반면 정씨는 정통 드라마에 승부를 걸어보고 싶단다.

"시트콤은 밥상을 차리는 것과 같아요. 같은 재료를 갖고 매일 다른 반찬을 내놓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더욱 힘들게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겁니다. 더욱 잘 차린 밥상을 올려야 하니까!"

풍성한 아이디어로 무장해 다시 돌아오겠다는 두 사람. 동료에서 부부로 거듭난 후 내놓을 작품이 궁금하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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