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묻는다] 3. 성베네딕도회 이형우 아빠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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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수도원에는 3, 4세기에 이 세상에서 물러나 이집트의 광야로 들어가 오로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던 은수자(隱修者)의 전통이 내려온다.

그래서 경북 왜관에 있는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찾던 지난 21일 수도원에 감돌지도 모르는 고독과 엄격함, 장엄함이 내심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막상 품에 안겨본 수도원은 포근했다. 지난해 9월 제4대 아빠스에 취임한 이형우(56.사진) 신부를 비롯한 수도승들의 표정이 무척 평화로웠다.

베네딕도회 고유의 명칭인 아빠스는 아버지란 뜻의 라틴어로 그 의미 그대로 공동체의 살림을 꾸리고 구성원들을 영적으로 이끌어가는 아버지를 일컫는다. 한글로 옮기자면 대수도원장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수도원 생활을 궁금해합니다.

"매일 다섯차례 기도해요. 그때마다 하느님 앞에 선 나의 모습을 살피죠. 누구나 훌륭한 분 앞에 서면 몸둘 바를 모르지 않습니까. 그렇듯 늘 부족함을 확인할 때 더불어 나아갈 수 있지요. 저희들은 결코 세상 바깥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안에 살죠.수도자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모습을 증거하는 사람이거든요."

왜관수도원은 활짝 열려 있었다. 일반 신도들이 수도원내 성당을 찾고, 그들의 수도 모임인 봉헌회가 매달 하루씩 이곳에서 수도승과 같은 일정을 따른다. 가정을 꾸리면서 영혼을 맑게 가꾸자는 뜻에서 4년 전에 만들어진 이 수도회의 회원은 현재 4백명 가량.

-수도사가 되는 과정이 무척 힘들죠.

"지원기.청원기.수련기 각각 1년씩 모두 3년이 흐르면 수도서원을 합니다. 그리고 4년동안 해마다 서원을 하는 유기서원기가 이어져요. 그렇게 7년을 거치고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여전하면 종신서원을 하게 됩니다."

베네딕도회의 모토는 기도와 노동을 통해 영혼과 육신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새벽 5시 기상, 7시까지 기도, 8시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작업, 그리고 낮기도와 점심 식사 후 오후 1시부터 5시30분까지 또다시 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오후 6시 기도와 묵상, 7시 저녁 식사 후 8시 기도를 끝내면 취침은 자유다.

노동은 채소 가꾸기와 빨래 등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 외에 출판(분도출판사)과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목공, 성구제작 등 왜관수도원의 역사(1952년 설립)만큼이나 다양하다.

-특별히 역점을 두는 사업이 있다면.

"아빠스가 된 후 사목표어를 '서로 섬기자'로 정했습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 선심을 베풀거나 연민의 정을 보이는 것으로는 이 사회를 맑게하기가 힘들어요. 섬긴다는 자세로 사람들을 대해야 진정한 사랑이 싹터요."

-청빈.청결.순명이 수도자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지만 인간으로써 흔들릴 때도 있지 않습니까□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삶이니까 늘 두려움이 앞서죠. 그러나 물욕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채우고, 이기적인 내 뜻 대신 하느님의 뜻으로 채우고, 가정이란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더 많은 사랑을 베풀면 잃는 것과 비교도 안되게 많은 것을 얻지요."

-우리 나라엔 종교를 가진 사람이 참으로 많은데도 사회 정의는 아직 먼것 같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가장 값진 걸작품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 모습이 있다잖아요. 먼저 자신의 존엄성을 깨달아야 해요. 우리 안의 고귀한 요소들을 발견해 품위를 지키고, 어떤 삶의 방식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를 늘 고민하고 반성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이곳에선 10대 후반에서 90대까지, 140여명이 평화롭게 자급자족하며 산다. 1965년에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들어간 이형우 아빠스는 74년 종신서원, 85년 대구 대명동 본당 주임신부를 거쳤으며 로마 아우구스티아노 대학에서 교부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왜관=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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