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CEO대통령과 MBA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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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가경쟁력 이론에 의하면 개도국은 정치 지도자와 정부 관료가 주도하는 나라이고, 중진국은 창업자가 주도하는 나라이며, 선진국은 전문경영자가 주도하는 나라다.

미국만 해도 오늘 기준으로 개도국에 불과하던 18세기 말에는 워싱턴.제퍼슨 등이 당시 사회의 영웅이었지만 중진국이었던 19세기에는 록펠러.카네기 등의 창업자들이, 그리고 선진국으로 도약한 20세기에 들어와서는 GM의 앨프리드 슬로언, GE의 잭 웰치 등 전문경영자들이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 선진형 전문경영자 시대

한국 역시 개도국 수준이던 1960~70년대에는 박정희 대통령, 중진국으로 부상한 1980~90년대에는 이병철.정주영.최종현 회장이 그 시대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발전시키자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결 조건인 전문경영자 양성에 있어서는 매우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전국 1백60여개 대학에서 소위 MBA라고 불리는 경영학석사를 매년 3천4백명 배출하고 있지만 MBA교육의 세가지 조건인 학생.교수.커리큘럼 면에서는 선진국 경영대학 수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경영자를 양성하기 위해 3년 이상의 실무를 경험한 사람 중에서 MBA 입학생을 선발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현장에서 고민했던 문제들을 학교에서 지도교수.동료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는 가운데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경영학 이론을 습득하게 된다.

이런 교육과정을 끝낸 졸업생들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경영자가 되어 입학 이전보다 2~3배 높은 연봉을 받고 중견간부로 입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실무경험이 없는 학부 졸업생들이 MBA과정에 입학한다. 따라서 이런 학생들이 받게 되는 2년의 MBA교육은 학부교육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선진국 경영대학에서는 경영이론뿐 아니라 이론을 실무에 적용하는 분석기술, 사람을 다루는 관리기술, 그리고 위험에 대한 도전적 정신과 적극적 자세를 종합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교수 1명당 학생 15명을 넘기지 않는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교수 2백20명이 학생 1천5백명을 가르치고, 우리와 비견되는 싱가포르 국립대학도 교수 1백80명이 학생 2천명을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칠판과 분필만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경영학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교수 증원에 인색하다.

서울대 경영대학만 해도 학부.석사.박사 과정에 복수전공 학생을 포함한 1천6백여명을 가르치는 전임교수 수가 불과 32명으로 교수 1인당 학생수가 50명이 넘고, 경영학 원론은 교수가 마이크를 잡고 3백명 앞에서 대중연설 하듯 강의한다.

경영교육 커리큘럼 역시 논문 작성을 중심으로 하는 일반 학술분야와는 크게 다르다. 선진국의 MBA과정에서는 논문 대신 60학점을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단, 교수의 일방적인 강의는 반도 안되고 사례토론.역할연기.비즈니스 게임.프로젝트 등 다양한 교육이 토의실.게임룸.공장.시장 등 경영현장에서 깊이 있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이 학술 논문과 함께 24학점만 이수하면 졸업장을 받는다.

*** 경영학 교육 이대론 안돼

전문경영자를 양성하는 데 어려움이 많지만 이를 해결하는 길은 있다. 우선, 선진국형의 MBA과정을 개설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실무경험자의 입학을 권장하고 교수진을 대폭 늘려야 한다. 성공한 창업 경영자들을 심층 분석해 한국적 경영학을 정립, 교육교재로 삼아야 하며 현장경영자들을 겸임교수로 활용해야 한다.

방학 중에는 기업에서 근무하는 인턴제도를 통해 학생들에게 현장과의 교류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선도적인 대학에서는 세계 수준의 경영대학원에 대한 공인기구인 AACSB로부터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해외 대학들과의 교환학생 협정을 통해 우리 학생들이 더욱 다양하게 해외경험을 하고 세계적인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경영학 교육이 가야 할 길은 멀다. 그러나 한국의 경영대학이 변신과 구조조정을 이룬다면 탄탄한 실력을 갖춘 전문경영자들을 배출해서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조동성(서울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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