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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시, 공익성 확보가 성공 열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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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갖가지 개발사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행정수도.기업도시.미래혁신도시.지역발전특구 등 개발사업의 이름도 다양하다. 특히 기업도시(민간복합도시)특별법의 제정을 둘러싸고 환경 파괴와 사회적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기존 공단 내의 공장부지는 남아도는데, 강제수용을 통한 새로운 농지의 개발은 반환경적이며 사회적으로도 평등한 정책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 근대 신도시가 출현하기 전에 건설된 기업도시는 "상당한 부동산과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하나의 회사 혹은 회사들의 그룹에 종사하는 고용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도시"를 말한다. 이와 같은 기업도시를 건설하는 데에는 두 가지 기본적인 동기가 있었다.

첫째, 기업 이윤 추구와 관련된 동기다. 고용 입지에 가까운 장소에서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공급함으로써 노동력을 유치하고, 유지하며, 조절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둘째, 박애주의와 관련된 동기다. 기업노동자들을 위한 보다 나은 환경을 창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좋은 기업의 경우에는 박애주의의 관점에서 기업도시를 조성하려 할 것이나, 나쁜 기업의 경우에는 이윤추구에 몰두함으로써 열악한 환경을 가지는 도시를 만들게 될 것이다.

영국의 양모제조업자였던 티두스 솔트 경이 브래드퍼드에 있는 기존 공장을 대체하기 위해 1850년대에 건설한 솔테어라고 하는 기업도시는 다른 기존의 도시보다 쾌적한 환경과 편익시설을 제공함으로써 기업의 번창과 함께 자본가들이 보여줄 수 있는 고귀한 임무를 많은 사람에게 가르쳐 준 좋은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1870년 영국의 기업가 조지 캐드버리는 본 빌이라고 하는 기업도시를 계획하고 건설했다. 건설 후 30년이 지난 뒤 기업주는 본 빌 기업도시의 토지와 주택의 소유를 독립된 '본 빌 마을 트러스트'에 양여하고 모든 이익이 이 마을 개선에 쓰이도록 했다. 박애주의 기업도시의 본보기가 된 것이다.

다른 또 하나의 성공적인 영국의 기업도시로는 선라이트를 들 수 있다. 이 기업도시는 물리적 설계보다는 혁신적 경제계획의 좋은 사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회사 이익의 일부를 노동자 임대주택에 보조해 주는 이윤배분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오래 근무한 노동자들에게 이 혜택을 우선적으로 제공해 노동자들이 이 기업을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미국에서도 여러 가지 형태의 기업도시가 개발됐으나 영국보다 덜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양국 간의 정치적.이념적 수준과 관련돼 있다.

영국의 주인과 하인 사이의 서로 이익이 되는 책임의 전통과 함께, 봉건주의 사상에 바탕을 둔 온정주의적이고 박애주의적인 이념이 영국의 부유한 기업가들로 하여금 성공적인 기업도시의 건설을 가능케 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도시노동계급의 문제를 치유하는 데 개인기업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47년 도시 성장을 다룰 보다 종합적인 주택과 도시계획법률이 제정됐으며, 기업도시들도 도시성장을 규제함에 있어 중앙정부의 규정과 참여를 받아들이게 됐다. 기업도시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전통적으로 불리는 기업도시는 주로 원료가 되는 자원과 가까운 곳에 들어섰다.

외국의 경험에서 우리나라 기업도시 개발과 관련된 몇 가지 시사점이 나온다. 우선 개발예정부지의 토지를 일정기간 보유해온 기업에 개발의 우선권을 주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다 영업이윤의 상당 부분을 기업도시에 환원해 공익성이 확보되도록 제도화하면 더 좋다. 이윤을 그 도시의 개선에 재투자하거나 일정기간이 경과한 뒤 독립된 트러스트를 만들어 토지와 주택을 양여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환경생태적 지속성의 확보 등 입지선정의 적정성이 확보되도록 할 필요도 있다. 또한 도시개발의 공공성이 확보돼야 한다. 경기부양의 단기적 처방을 위한 경제적 인센티브는 더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윤리적 이슈에 바탕을 둔 보전을 위한 경제적 인센티브도 아울러 고려해 봐야 할 때다. 기업도시 개발의 동기를 꼼꼼히 따져볼 때 환경과 경제의 상생정책에 대한 해법이 기업도시건설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김귀곤 서울대 교수 환경생태계획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