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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심재륜 전 고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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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당대 최고의 특수수사 검사로 꼽히던 심재륜(沈在淪.58)전 부산고검장. 그는 지난 18일 퇴임식에서 '최고 인사권자'까지 거명하며 거침없이 검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물러났다.

그는 1999년 1월에도 법조 비리에 연루됐다는 오명을 쓰고 퇴임했었다. 당시 중앙 언론사의 법조 출입기자들은 공직생활을 접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진 기념패를 전달했다.

'국민의 검사를 기리며…평소 여자.안주.스폰서가 없는 3무(無) 술자리를 만들어 주신 데 감사한다.' 허름한 술집에서 고추장과 멸치 한줌에 폭탄주 돌리길 즐겨했던 그를 기억하며,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기자들이 검찰 간부에게 패를 만들어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그는 곧은 성품으로 기자뿐 아니라 일선 검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검찰 수뇌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 뒤 면직처분을 받아 검찰에서 떠나야 했던 그는 그러나 지난해 8월 다시 검찰로 돌아왔다.

소송을 통해 '면직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복직 5개월여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구겨진 종이가 펴지듯 천천히 검찰의 빛과 그림자를 들려주었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에 큰 눈이 내리던 날, 심재륜 전 고검장을 그의 집(서울 여의도 광장아파트)에서 만났다. 그는 처음에는 인터뷰를 완강히 거절했다. "퇴임식에서 할 얘길 다 했는데, 신문에 또 나가면 모양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는 "이렇게 눈 속을 뚫고 왔는데 차 한잔은 줘야 되는 것 아니냐"며 몇 번이고 청했다. 결국 "민감한 얘기는 묻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고 겨우 거실 소파에 마주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앉자마자 기자는 그 조건이라는 걸 깨야 했다. 그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입을 열었다.

-퇴임식에서 현 상황을 '검란(檢亂)'이라고 규정했다. 그 근거는.

"검찰 내부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또 국민이 검찰을 외면하고 있다. 이 정도면 검란 아닌가."

-그 원인은.

"퇴임식에서 밝혔듯 검찰 인사가 번번이 잘못되고, 정치권력이 검찰권을 간섭해서 벌어진 일이다."

-인사는 왜 잘못됐나.

"최고 인사권자가 자신이 신세를 진 사람을 검찰 요직에 앉히고, 그 간부는 또 수족처럼 관리해온 사람을 중용해온 탓이다."(그는 이명재 신임 검찰총장의 경우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말 정치권력이 검찰권에 간섭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게이트'라는 게 왜 생기는가. 비리의 뒤에 숨어 있는 실세들이 정당한 수사에 압력을 가하기 때문 아닌가."

-이용호 게이트의 특별검사로 거명됐을 때 '사건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또 어디까지 번질지 가늠이 안됐다. 사실 이번 정권에서 그 전모가 밝혀질지 의심스럽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자신의 발언이 정치권력에 의해 잘못 해석될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침묵을 깨기 위해 개인적인 얘기를 물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좌우명이 '사무사(思無邪)'라고 했다. 마음에 조금도 나쁜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머리를 퇴임사로 돌렸다.

-퇴임 때 너무 세게 얘기했다는 지적이 있다.

"나를 버린다는 심정으로 퇴임사를 작성했다. 사람들은 항상 만약을 대비해 말에 '씨'를 묻어둔다. 나도 인간인 이상 유혹에 빠질 수 있다.그래서 그 씨를 없애고 나온 것이다. 또 검찰에 남아 있는 후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말은 해야 했다."

(그는 '씨'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나중에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니 '관직'을 가리키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조직도 생각해야 하는데, 최근 몇년간 너무 튀는 발언을 했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조직을 사랑하기 때문에 참을 수 없었던 거다. 침묵하는 것만이 검찰을 위하는 길인가."

-상명하복이나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것도 있는데….

"그런 원칙들은 검찰간부를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수사를 잘해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라고 있는 것이다. 검찰 수뇌부가 올바르지 않게 처신하는데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되겠나."

-1999년 1월 면직처분을 받고 검찰을 떠난 뒤 야당에서 국회의원 공천을 제의했다고 들었다.

"구체적인 건 얘기하고 싶지 않지만, 당시 호의를 거절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과감히 거절했다. 이른바 정치검사들한테서 '정치하려고 검찰 수뇌부를 공격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다. 나는 검사다. 언론계에 대(大)기자가 있는 것처럼, 평생검사로 늙어죽고 싶었던 사람이다."

-이른바 정치검사란 무엇인가.

"권력에 줄을 서, 그들의 입맛에 맞게 사건을 처리하는 자들이다. 검사는 '부정(不正)을 부정(否定)'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권력 주변에서 무리를 지어다니며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검사들이 있다."

-정부는 검찰 개혁의 하나로 특별검찰청 설치를 추진하는데.

"한마디로 이원집정부제와 비슷한 발상이다. 미봉책이다. 검찰조직은 단일화하는 것이 좋다. 항속성이 있어야 한다. 차라리 대검 중앙수사부를 독립시키는 것이 어떻겠나."

점심 때가 됐다. 그는 그런 얘기는 그만하자며 식사나 하자고 했다. 집에서 5분쯤 걸어가 한 일식집에 들어갔다. 걸어가는 도중 그는 지금까지 다룬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반포AID아파트 부정당첨 사건'(74년)과 '김현철 구속 사건'(97년)이라고 했다.

전자는 국내 최초의 컴퓨터 범죄였고, 후자는 검찰 사상 최대 사건이었다. 검사 심재륜은 특수수사의 대가로 통했다. 서울지검 특수.강력부장, 대검 중수.강력부장을 모두 거쳤다. 신문의 1면 톱과 사회면 톱을 장식했던 사건만 추려도 60여 건에 이를 정도로 검사생활 30년 동안 굵직굵직한 사건을 해결했다.

일식집에 앉자마자 맥주 몇 병을 시킨 그는 "역사는 왜 이리 반복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前) 정권 때의 교훈을 뼛속 깊이 새겼더라면 이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97년 대통령의 아들이자 '소통령'으로 불렸던 김현철씨를 구속한 것을 계기로 검찰권은 바로 설 수 있었지만 실기했다는 것이다.

-기회를 놓친 이유는.

"권력 교체기에 이른바 정치검사들이 검찰의 요직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과거 정권과 현 정권의 검찰권 행사를 비교한다면.

"나아진 게 없다. 반복.퇴행했다고 할까. 세풍(稅風).충풍(銃風) 사건을 보라.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병역비리 수사는 어떠했나. 겨우 야당 국회의원 한명을 처리하지 않았나."

인터뷰 도중 그는 되도록 '최고 인사권자'의 얘기를 꺼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권이 이렇게 왜곡된 원인이 검찰 자체에만 있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검찰의 잘못 때문에 정부가 피해를 봤다고…. 이는 정부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주장이다. 제일 큰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데…."

그는 비운 맥주병을 테이블 한쪽에 모으면서 화제를 술로 돌렸다.

"맥주를 많이 먹으면 위하수가 생기고, 양주를 많이 먹으면 곳곳이 구멍이 나는데…. 하지만 난 맥주가 좋다. 값이 싸기 때문에 스폰서를 댈 필요 없이 내 돈 내고 먹을 수 있고."

그는 대단한 폭탄주 애호가다. 앉았다 하면 사람당 폭탄주 10잔을 30분 만에 돌리곤 했다. 하지만 요즘 몸이 옛날 같지 않아 가급적 줄이고 있다.

취기가 느껴질 때, 어떻게 검란에서 헤어날 수 있을지를 물어보았다.

"제도나 이론은 해법이 아니다. 검찰 내에서 정치검사들이 설 땅을 없애야 한다. 특히 검사 개개인이 '마음 속의 정치검사'를 몰아내야 한다."

그는 우리 검찰이 이룬 업적이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선 검사들이 너무 몸을 낮출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게 마련이므로 죽기를 각오하고 자신과 주변에서 부정을 몰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력은 짧고 그 고통은 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도 했다. 정치검사들은 짧게 권력을 향유한 뒤 길게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지금까지 나간 자신에 관한 기사 가운데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했다. "내 키는 1백64㎝인데 자꾸 1백60㎝라고 적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맥주 10병을 뱃속에 채웠을 때 그와 기자는 함께 일식집을 나왔다. "앞으로 정치를 하실 거냐"고 물었다.

그는 "당분간 정치는 물론이고 변호사 개업도 하지 않고 쉬겠다"고 했다. 헤어지면서 그에게 "오프 더 레코드'를 지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귀띔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슬며시 웃었다. 여전히 눈이 어지럽게 내리고 있었다. 세상이 '설란(雪亂)'인지, 검란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규연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 심재륜은

▶1944년 충북 옥천 출생▶62년 서울고 졸▶66년 서울대 법대 졸▶67년 제7회 사법시험 합격▶72년 서울지검 검사▶86년 대검 중수과장▶88년 서울지검 특수1부장▶90년 서울지검 강력부장▶93년 대검 강력부장▶97년 대검 중앙수사부장▶97년 대구고검 검사장▶99년 변호사 개업▶2001년 대검 무보직 고검장▶2002년 부산고검 검사장에서 퇴임▶부인 공경혜(孔京惠)씨와 1남1녀▶취미 독서.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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