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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지방선거 이후 경제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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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부가 6·2 동시지방선거를 의식해 미뤄뒀던 정책들을 다시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이익단체의 반발에 부닥쳐 덮어뒀던 영리 의료법인 도입, 전문자격사 선진화, 공공기관들이 내켜하지 않는 개혁, 각종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세금 감면 축소 등 싸움판을 각오해야 할 골칫거리들이다. 재정건전화의 각론을 만드는 일도 남았다. 그 과정에서 나라 곳간을 축낼 우려가 있는 허튼 공약들은 솎아내야 한다.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도 큰 숙제다.

경제 부처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6·2 동시지방선거의 표심을 의식해 미뤄 뒀던 일꾸러미 때문이다. 한결같이 인기가 없거나, 이해관계가 얽힌 정책더미들이다. 선거가 마무리된 뒤엔 정면승부를 볼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선거라는 격랑을 만나 느리게 항해하던 배가 다시 목적지를 향해 돛을 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고통 따르는 출구전략=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출구전략에 대해 “2분기까지 경기상황을 지켜본 뒤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선거 이후 금리 인상 여부를 다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금리를 올리자니 가계의 이자부담이 발목을 잡는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출 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마다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은 1조원 이상 늘어난다. 그렇다고 금리를 가만히 놔두면 가계부채는 더욱 빠른 속도로 불어날 위험이 있다. 딜레마다.


윤 장관은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출구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말이 그렇지 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어려운 숙제다.

출구전략이 시행되면 영양주사에 의지해 연명하던 기업들은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부실 건설사가 대표적이다. 임종룡 재정부 제1차관은 “2006년 이전에 번 돈과 정부의 한시적 지원으로 버텨온 건설사들이 한계를 드러내고 쓰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발 큰 서비스업 선진화=“정책의 루비콘강을 건너야 한다.” 윤증현 장관이 연초 서비스산업 선진화정책을 두고 했던 말이다. ‘루비콘강’은 오래 유지된 기존 질서,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싶지만 엄청난 갈등과 분열이 발생해 추진이 쉽지 않은 선진화 방안을 일컫는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선 강력히 밀어붙일 수가 없었다. 재정부는 이해관계자 설득과 공감대 확산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를 하반기 추진 사안으로 미뤄 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전문자격사 선진화다. 정부는 이를 하반기에 확정하고, 내년 상반기에 관련 법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약사·변호사·감정평가사 등의 단체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격전이 불가피하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의료법인) 도입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지난해 말 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용역을 실시했으나, 반발이 거세지자 논의를 중단했다. 정부는 하반기에 다시 공론화할 계획이다.

정부는 5대 유망서비스 분야 가운데 지금까지 확정한 콘텐트·미디어, 사회서비스 분야에 이어 7월 말까지 전문자격사와 영리의료법인 문제를 제외한 관광·레저, 교육·연구개발(R&D), 보건·의료 등 5대 유망서비스를 선정해 일자리 창출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공공요금 들썩=최근 물가는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7%였다. 넉 달째 2%대다. 한은의 관리목표인 2~4%에서도 아래쪽에 가깝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위원은 “보통 경제위기가 끝나도 이전 수준의 성장률을 회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요 측면에서 물가상승 압력은 한동안 낮은 수준에 머물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제관료들은 “물가가 제일 걱정이다”고 말한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지표와 달리 체감물가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 그동안 나빴던 날씨는 하반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봄철 과실수 생육이 좋지 않아 여름 이후 계절과일의 값도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억눌렀던 공공요금 인상도 기다리고 있다. 한전은 올 1분기에도 1조원 넘는 적자를 냈다. 가스공사는 금융위기 이후 가스 값에 반영하지 못한 원가(미수금)가 3조4000억원이나 쌓여 있다. 정부는 하반기에도 공공요금은 손대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김영학 지식경제부 1차관은 지난달 “지금으로선 선거 이후에도 전기·가스 요금을 올릴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빠듯해진 재정=지난해 정부는 재정을 조기 집행해 상당한 효과를 봤다. 경기가 고꾸라지는 것을 재정이라는 완력으로 버텨내면서 민간부문이 회복할 시간을 벌어줬다. 재정은 올 상반기에도 앞당겨 집행됐다. 상반기까지 정부는 집행가능 예산의 60%인 163조원을 쓸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쓸 돈이 줄어든다. 문제는 지금보다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회복세는 둔화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지난해처럼 돈을 풀어 경기를 지탱해야 할 상황은 아니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연구위원은 “보통 재정부분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가계나 은행 등 민간부문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럴 때 정부가 대처할 여력이 없다면 피해가 증폭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위해 씀씀이를 확 줄일 궁리를 하고 있다. 이용걸 재정부 제2차관은 “2011년 예산편성 지침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재정건전성 의지를 더욱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불요불급한 비과세·감면도 축소할 방침이다. 재정부는 8월에 내놓을 세제개편 방안에 구체적으로 포함시킬 비과세·감면 축소 대상을 다각도로 수집 중이다. 7월께 업계 및 부처 협의를 거쳐 최종안이 확정된다. 선거가 끝난 이상 정부는 조심스럽긴 하지만 다시 술·담배 등에 붙는 간접세 인상을 조심스럽게 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허귀식·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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