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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푸엔테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노인은 야위고 목덜미에 깊은 주름살이 잡힌 말라빠진 사람이었다.뺨에는 열대의 햇살에 그을린 검버섯 같은 반점이 있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걸작 『노인과 바다』의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난주 쿠바의 아바나발 외신은 이 소설의 모델이었던 그레고리오 푸엔테스라는 인물이 사망했다고 짤막하게 보도했다. 오래도 살았다.1백5세.

헤밍웨이보다 두살 위인 푸엔테스는 바다에서 죽은 아버지에 이어 배를 탄 타고난 어부였다. 헤밍웨이와는 1930년대 말에 그의 낚싯배 키를 잡으며 인연을 맺은 후 헤밍웨이가 자살할 때(61년)까지 낚시친구.술친구로 우정을 나눴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 참전을 거쳐 40년에 아바나에 정착했다. 참전 경험을 토대로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쥔 그는 아바나에 방 8개에 멋진 풀을 갖춘 저택을 마련하고 창작활동을 하게 된다.

이 집에는 게리 쿠퍼나 잉그리드 버그먼.에바 가드너 같은 유명 배우들도 자주 들렀는데, 술에 취한 헤밍웨이가 에바 가드너와 알몸으로 수영을 즐기는 모습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푸엔테스 역시 단골손님이었다. 헤밍웨이의 네번째이자 마지막 아내였던 메리 웰시는 "술에 취한 남편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낭독하면 문맹을 겨우 면한 낚시꾼 친구들이 넋을 잃고 듣고 있었다"고 썼다.타임지 통신원 출신인 그녀는 이런 정경을 '우스꽝스럽지만 감미로웠던 장면'으로 기록하고 있다.

52년에 발표한 『노인과 바다』는 이듬해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을, 다시 한해 뒤에는 노벨문학상을 안겨준다. 그는 노벨상 상금을 아바나의 성당에 전액 기부하고 "당신이 무엇을 소유했음을 알게 되는 것은 그것을 누군가에게 주었을 때"라는 말을 남겼다.

소설 속에서 노인은 84일 동안 고기 한마리 못잡다가 홀로 먼바다로 나가 이틀간의 사투 끝에 엄청난 대어를 잡는다. 그러나 배보다도 큰 고기를 끌고 항구로 돌아오는 도중에 상어떼를 만나 살점은 모두 뜯기고 뼈만 달고 오게 된다. 헤밍웨이가 이 소설을 통해 세상에 주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푸엔테스는 소설 속에서 노인이 고기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상어떼와 밤새 싸우며 외쳤던 이 대목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인간은 파괴될 수 있으나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손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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