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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경제전문가 좌담 "2005 중국경제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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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 중앙일보 대회의실에서 열린 중국 경제 전문가 좌담회에서 문정인 위원장, 정덕구 의원, 장수광 교수, 김정수 소장(왼쪽부터)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변선구 기자

달러화 약세가 뚜렷해지면서 중국 정부의 위안화 절상을 포함한 경제정책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3 ~5일 올해의 경제정책을 평가하고 내년도 경제정책의 방향을 잡기 위한 '중앙경제공작회의'를 열었다. 본사는 3일 국내의 중국 경제 전문가들과 중국 내 경제 전문가를 한자리에 모아 위안화 평가절상,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 출석자

장수광(張曙光)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교수

문정인 동북아시대추진 위원회 위원장

정덕구 국회의원(열린우리당)

김정수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사회>

사회=먼저 중국의 경제정책 운용과 관련해 후진타오(胡錦濤)국가주석 체제에서는 장쩌민(江澤民)전 국가주석 때와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말씀해 달라.

장수광=경제를 주관하는 총리를 비교해 보겠다. 주룽지(朱鎔基)전 총리와 원자바오(溫家寶)현 총리는 경제 운용에서 기본적으로 장쩌민 주석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이들은 사회 안정을 대전제로 정책을 취한다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다만 주 전 총리는 과단성 있는 불도저 같은 반면 원 총리는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식이다. 또 원 총리는 농촌 문제와 노동자 생활에 특히 관심이 많다.

사회=중국은 고속성장 속에서 도시와 농촌 간, 동(연안)과 서(내륙)간 불균형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장=중국의 상위 1% 부유층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5%를 생산한다. 국민도 정서적으로 빈부 격차를 인식한다. 지방도시 등 낙후된 지역에서 항의 집회가 자주 일어나고 있는데 그 강도가 세지고 있다. 정부 당국도 이를 잘 알고 있고, 사회 안정이 정권 유지의 대전제이기 때문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첫째, 재정수입의 상당 부분을 복지 부문에 돌리고 있다. 둘째, 불안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농촌지역의 농업세를 감면하거나 일부 지역에서 폐지하고 있다.

사회=중국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 한.중 경협에는 어떤 시사점을 가지는가.

장=중국 정부의 농촌에 대한 지원에 힘입어 농촌의 1인당 국내 총생산(GDP) 증가율이 도시를 앞지르고 있다. 농촌에 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서부에도 투자가 이뤄지면서 시장이 개발.확대되고 있다.

문정인=중국은 내부 불규형 문제를 풀기 위해 동북 3성 재개발, 서부 대개발, 중소 도시 육성에 나서고 있다. 동북 3성 재개발과 관련해 한국 기업들은 선양(沈陽).다롄(大連) 등과 협력하고 있다. 서부 대개발의 핵심인 자원 개발이나 대규모 인프라 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기회가 많다.

정덕구=중국이 불균형 문제를 풀기 위해 시행하는 정책이 한국에 기회가 되겠지만 잠재적 위험 요소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중국에 최근 사회주의 성격보다 시장경제 성격이 강해지면서 국유 기업과 농촌의 부실이 쌓여가는 위험이 있다. 이런 부실을 정리하려고 할수록 공산당의 지배체제인 국유 기업과 농촌이 흔들리게 되는 것도 위험 요소다.

사회=후진타오 체제 하에서 중국의 대외 경제정책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장=장쩌민 전 주석이 무대를 만들었다면 후진타오 주석은 춤을 추거나 공연을 하는 식이라고 비유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 중국은 수출 등으로 실물 부문은 발전했으나 자본시장 등 화폐 부문은 낙후돼 삐걱 거리고 있다. 이런 불균형을 개선하려 하고 있다. 경제 중심 국가 역할을 하려는 욕구가 강해 이웃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 등 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석유.철강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중앙아시아.러시아.파키스탄과 관계를 맺고 있다.

사회=중국이 범 세계적 네트워크를 염두에 두고 있어 더 이상 동북아 경제 협력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장=중국의 지도부는 글로벌 전략을 갖고 있다. 내부적으로 일본과 보이지 않는 역사적.현실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중앙아시아와 파키스탄 등에 눈을 돌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수출을 통해 성장하는 상황에서 주변 국가와의 협력을 무시하고 글로벌 전략을 취한다는 게 맞지 않다. 동북아 경제 협력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문=경제 발전의 동력은 동북아에 모여 있다. 3일 전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 총리를 만났는데 지금 한.중.일 3국이 모두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더라. 아세안 쪽으로 먼저 가 공동체를 구성한 뒤 동북아로 돌아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동북아 협력이 선행돼야 한다.

정=동북아 3국이 동남아를 우회하는 협력관계를 갖는 데는 이유가 있다. 먼저 일본과 중국 사이의 보이지 않는 패권주의 대결이다. 과거사로 인해 풀리지 않은 앙금도 있다. 또 일본도 아세안에 관심이 많고 중국도 화교 경제권인 아세안을 놓칠 수 없다 보니 아세안이 힘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장=동북아 경제협력 체제가 구축되면 동북아 3국 모두에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3국 간에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이 개입하면 분열돼 버리는 것 같다. 민간 부문의 신뢰도 구축돼야 한다.

사회=한.일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게 될 텐데 이에 대해 중국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장=중국인은 일을 할 때 이것 자르고 저것 버리는 식으로 하지 않고 중첩적으로 동시에 한다. 아세안과 추진하면서 한.일 FTA 추진도 지켜보고 남아시아(인도.파키스탄)와도 협력한다. 어느 쪽이 먼저냐의 문제지, 협력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문=한.일 FTA가 타결되면 중국에 주는 부정적 함의가 클 것이다. 한.중.일 3국 FTA가 체결되면 3국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 중국도 한.중.일 3국 FTA에 더 적극적으로 나와야 한다.

정=3국간 FTA가 순조롭게 추진되려면 보완적 산업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배를 만들 때 조립은 중국 다롄(大連)에서, 디자인 등은 한국에서, 첨단장비와 자본은 일본이 대는 방식이다. 이런 것이 전제되기 전엔 3국 FTA는 짧은 시간에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다.

사회=중국 위안화 환율에 대해 후진타오 정부는 어떤 입장인가.

장=중국의 환율 정책에는 세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不變不行)는 것이다. 셋째, 효과를 분석한 결과물이 나온 뒤에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기의 문제인 셈이다. 중국은 그동안 외환시장을 정부 통제로 유지해 와 (변동환율제에 대한) 충분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학자들이나 정부 부서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위안화 평가 절상은 일러야 내년 하반기 말에나 가능할 것이다.

문=중국이 올해 말 일본을 제치고 세계 3대 무역 국가가 된다. 무역 흑자 규모도 엄청나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화 절상을 안 하면 세계 경제뿐 아니라 동북아 금융 안정에도 부담이 될 것이다.

정=중국의 환율정책은 현재의 이익 여부를 따질 단계가 아니다. 지금 막으면 막을수록 뒤에 가서 환율 조정의 부담이 더 커질 것이다. 중국은 일단 금리를 올려 국내 경기의 김을 빼고 그래도 안 되면 환율을 절상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다.

사회=중국이 애를 쓰는 데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가 중국에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서 시장경제지위(MES)를 인정해 주지 않고 있다.

장=중국은 가격을 시장에서 결정하는 정도(시장경제화)가 92%에 도달했다. 한국이 중국의 시장경제지위 획득에 도움을 주길 기대한다. 시장경제지위를 주는 명분과 타이밍에 따라 한국이 받을 반대 급부가 좌우될 것이다.

문=지난 4월 15일 중국이 우리 정부에 공식적으로 시장경제지위 인정을 요청해 왔다. 시장경제지위 인정에 따른 영향을 평가 중인데 그 결과가 나오면 유럽연합(EU).일본 등의 정책을 참고해 전향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다.

사회=중국은 중국대로, 한국은 한국대로 동북아 경제의 중심이 되겠다고 하는데 마찰이 없겠는가.

문=한국이 모든 경제 분야에서 중심이 되겠다는 게 아니다. 동북아 역내 분업 질서를 충분히 활용해 비교 우위를 갖겠다는 것이다. 금융 부문에서 한국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 중국의 구조조정 시장에 적극 참여하면 한.중 금융 협력이 가속화될 것이다. 중국이 계속 성장한다면 인천.광양.부산항이 중간 기지로 활용되는 등 물류 부문에서도 협력할 공간이 넓다.

정리=이영렬.장세정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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