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핵과 부시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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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세계전략의 두 날개는 테러 및 대량살상무기의 반확산과 미국적 가치의 확산이다. 여기에 걸림돌이 되는 소위 '악의 축' 가운데 하나가 북한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정책 목표는 정권교체를 통한 '자유 북한'이며,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차선책으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반드시 폐기시킨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북핵 처리 원칙은 분명하다. 첫째, 북핵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국제사회의 문제이므로 다자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폐기(CVID)'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북한의 핵 포기가 선결 요건이며 어떤 경우에도 "악행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넷째, "모든 대안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핵 문제에 대응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대화, 대북 제재, 핵 보유 방치, 비밀공작에 의한 정권교체와 군사행동 등이다. 미국은 먼저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법'을 시도할 것이다. 이것은 미국에도 최선책일 뿐 아니라 이후 대북 압박을 위한 국제사회로부터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한 수순이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미국은 대북 제재 또는 핵 보유 방치 가운데 하나를 택할 것이다. 중국이나 한국 등 주변국으로부터 대북 제재에 대한 협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면 '제재를 통한 대북 압박'에 들어갈 것이며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북한의 핵 보유를 방치'해 주변국들의 책임과 역할을 촉구할 수 있다.

다음으로 미국은 중국의 협조하에 김정일 정권을 좀더 다루기 용이한 친중정권으로 교체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수 있다. 미.중 양국은 북핵 해결과 더불어 중국은 다루기 편한 친중정권을, 미국 입장에서는 국제질서에 좀더 순응하는 북한정권을 만드는 공통의 이해를 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과 한국이 군사적 해결에 동의하거나 한국은 반대하지만 중국이 암묵적으로 묵인할 경우 미국은 '대북 군사행동'을 염두에 둘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도 이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결국 가장 가능성이 큰 대안은 대화를 통한 해결책 모색이지만 가시적 성과가 없을 경우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강화, 대북 경제교류 억제 등 압박을 병행 추진하는 것이다. 중국도 미국의 무력 사용을 용인하기보다는 대북 압박이나 친중정권으로의 교체에 협력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

미국은 21세기 반테러 동맹체제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정치의 성격 변화는 동맹의 의미도 바꿔놓고 있다. 미국은 새로운 위협에 직면해 적과 동지를 구분하며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동참하지 않는 동맹국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가 직면한 북핵 해결이나 민족통일로의 진전은 국제정치의 흐름과 틀을 벗어날 수 없다. 국제정치의 성격 변화에 냉철하게 대처하는 지혜와 능력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 간에는 북핵 위협에 대한 인식과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매우 크다.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대(對)테러 문제 또는 핵 비확산의 관점에서 보는 반면, 한국은 북핵 문제가 외교적 고립과 경제 파탄에 처한 북한의 안보 불안에서 파생한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한국은 북한의 개혁.개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미국의 상당수 전문가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그간 북.미 협상의 중재자 혹은 촉진자로서의 역할 이행을 위해 부심해 왔지만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냉정하게 계산하고 행동하기보다는 자신이 설정한 이상적 사고에 사로잡혀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해왔다. 한때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입장에 서서 접근해야 한다는 '내재적 (북한)접근법'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제 미국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한 '내재적 (미국)접근법'이 필요하다.

남궁영 한국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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