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시내버스 연초시동 불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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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배기가스의 먼지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엔진을 장착한 시내버스를 보급해 대기오염을 개선하겠다는 정부 시책이 입법 10년 만에 시행시기를 맞았으나 관련 부처의 소극적 태도와 업계의 비협조로 시동을 못걸고 있다.

17일 환경부에 따르면 정부는 1993년 대기환경보전법을 개정해 2000년1월부터 디젤 시내버스의 배기가스 먼지의 허용기준을 기존의 0.15g/㎾H 이하에서 0.1g/㎾H 이하로 강화하기로 했다가 IMF사태에 따른 생산업계 사정을 고려해 발효시점을 올해로 2년 늦췄다.

그러나 현대.대우차는 아직까지 새로운 배기가스 허용 기준에 맞는 엔진을 만들지 못해 지난 1일부터 디젤 시내버스 생산이 중단된 상태다.

이에 따라 시내버스 업계는 월 4백여대 수준의 노후 차량 교체가 불가능해 일부 버스 운행이 중단될 처지에 놓이자 정부에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17일 정부에 "시내버스 운행이 중단되지 않도록 버스 교체 시기(출고 후 9년)를 6개월 이상 연장해 달라"고 건의했다.

이와 관련해 환경부와 산업자원부.건교부 등은 대책 회의를 열었으나 엇갈린 입장만 확인한 채 뾰족한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산자부는 기술력과 준비기간이 부족해 엔진 개발을 못하고 있다며 시행 시기를 유예해 달라는 버스생산 업계의 입장을 대변했고, 건교부도 차령 연장보다는 시행 연기가 낫다고 동조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측은 "신차 개발에 보통 3년이 걸리기 때문에 법이 개정된 지 10년이 지난 것을 감안하면 버스생산 업체들이 새 기준에 맞는 차량을 충분히 개발.보급할 수 있었다"며 무성의를 비난했다.

환경부는 기술개발이 어려울 경우 기준에 맞는 엔진을 수입해서라도 새로운 디젤 버스를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입 이 어렵다면 압축천연가스(CNG)버스로 대체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그러나 버스 생산업계 관계자는 "현행 기준에 맞추기 위해 외국 엔진을 수입하면 가격이 비싸지는 등 경영상 문제가 있고 CNG버스는 충전소가 모자라 추가도입이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CNG버스와 함께 새 디젤버스를 도입해 먼지 오염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한다는 계획이었다.

국내의 먼지오염도는 서울의 경우 입방m당 90㎍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99년 내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외국과 비교하면 오염이 매우 심한 편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는 97년 38㎍으로 보고됐고 프랑스는 95년 기준으로 25㎍이다.

99년 기준으로 시내버스는 전체 차량대수 1천1백16만4천여대 가운데 0.27%인 3만1백44대였으나 오염물질, 특히 먼지를 4천6백33t 배출해 전체 차량 배출량의 6.8%를 차지했다.

한편 환경부는 서울 등 월드컵 개최도시와 수도권 도시를 중심으로 지난해 말까지 전국에 2천3백54대의 CNG 시내버스를 보급한다는 계획이었으나 가스충전소 부족 등의 이유로 실적은 2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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