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서인석 '태조 왕건' 시청률 견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지난 2년 가까이 견훤은 제 분신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와 함께 울고 웃으며 그 속내까지 들여다볼 정도가 됐습니다. 이제 견훤의 시대가 간다고 하니 개인적으론 안타까울 뿐입니다…."

KBS '태조 왕건'에서 '견훤'역을 맡은 서인석(54)씨는 드라마 속에서 견훤을 부활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강렬한 눈빛과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견훤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했다.

극의 인기를 주도하던 '궁예'가 죽은 후 한때 급속히 떨어졌던 시청률을 회복시킨 것도 그의 불꽃 같은 연기였다. 오죽하면 견훤에 비해 왕건이 지나치게 초라하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한 배역에 몰입하면 배우는 그 존재를 닮아 간다고 한다. 그는 견훤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서씨는 승자만 기억되는 비정한 역사에서, 견훤이야말로 평가절하된 보기 드문 영웅이라고 단언한다.

"견훤은 불같은 다혈질이면서도 때론 백성들을 위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여린 면도 있는 인물입니다. 만약 그가 가정을 잘 다스렸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겁니다."

그동안 서씨는 다른 드라마 출연은 모두 고사한 채 '태조 왕건'에만 매달렸다. 이런 뜨거운 열정 속에 크고 작은 사고도 겪었다.

그 중 하나는 지난해 경기도 남한산성에서 전쟁 장면을 찍다가 오른쪽 목에 불화살이 스치고 지나간 것.

이 때문에 병원에서 피부 이식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하지만 견훤이란 인물이 주는 매력 때문에 고통보다는 즐거움만이 기억난다고 한다.

"연기자로서 궁예나 견훤 같은 개성 넘치는 인물을 연기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비운의 황제가 저에게도 인생의 혜안을 열어 줬지요. 저, 왕건 하나도 안 부럽습니다. 허허허." 그는 어느새 역사 속 견훤으로 돌아와 있었다. 왕건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점만 빼고.

이상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