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4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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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쟁에 나갔으면 뭘해. 말씨로 보면 고문관이 분명한데.

고문관이란 한국군 부대에 파견 나와 있던 미군 연락장교들이 말도 통하지 않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고 하여, 내무반 안의 좀 모자란 병사를 쓸모없는 놈으로 일컫던 말이었다. 고문관이란 말은 그후 오랫동안 군대 용어로 대물림을 하여 내 세대는 물론 내 아들 대에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하여튼, 아마도 찌꾸 형이 그의 전쟁 경험담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앞장섰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별명을 고문관이라고 지은 사람이 찌꾸 형이었기 때문이다. 고문관 아저씨는 역시 양색시로 미군 하사관과 살림을 차린 누이 집에 얹혀 살고 있었다. 먼저 뿌리 박고 살던 동네 사람들은 나중에 몰려든 이들을 건성으로 대하거나 무시하게 마련이었는데, 방세는 꼬박꼬박 비싸게 받아 먹으면서도 동네 곳곳에 박힌 양색시들과 그 식구들을 천대했다. 동네 어른들은 특히 누이를 그 따위 짓이나 시켜놓고 제대하여 빈둥거리는 그를 비웃으며 누구나 반말 비슷하게 말을 붙이곤 했다. 아이들은 그가 군대에서 신통했을 리가 없다고 벌써 의논을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가 그를 인정하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쌍성루 건너편에는 큰길을 경계로 다른 동네가 있었는데 우리네보다 조금 지대가 높은 곳이었다. 해주 이모네도 거기 살고 유치원이 있는 교회도 그 동네에 있어서 나는 그쪽의 여러 갈래 골목들을 제법 아는 편이었다. 우리 동네에도 방앗간이 있었지만 그쪽 구역에도 우리네보다는 조금 작지만 비슷한 방앗간이 있었다. 방앗간이라고 하니 시골 살던 이들은 그저 방아틀에 공이가 몇 개 달린 물레방앗간 정도를 떠올리겠지만 여러 개의 톱니바퀴와 피댓줄이 돌아가는 작은 공장 규모의 정미소라고 해야 맞겠다. 쌍성루에서 마주 뚫린 길 모퉁이에는 작은 이발소와 솜틀집이 붙어 있었고, 쌀겨와 먼지가 뽀얗게 날아다니는 방앗간 뜨락에는 용감한 거위 한 쌍이 돌아다녔다. 우리가 구경이라도 해보려고 마당 안으로 들어서면 거위들은 긴 모가지를 뱀처럼 땅바닥에 숙이고 짖어대면서 쫓아나왔다. 개에 못지않게 무서워서 한번 혼난 아이들은 다시는 그쪽으로 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어느 날 나와 짝패이던 염색집 국원이가 달려와서 그 방앗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려주었다.

-굵은 전깃줄이 지붕 위로 늘어진 걸 모르고 어떤 애가 지붕에 얹힌 공을 꺼내러 올라갔다가 전기에 붙어버렸대. 난 거기까지만 들었어.

우리는 이발소 앞길에 이르렀는데 벌써 진을 치고 구경하는 사람들로 길이 막혀 있었다. 순경 한 사람이 호루라기를 불며 몰려드는 구경꾼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손짓으로 제지하며 쩔쩔매는 중이었다. 자전거를 끌어다가 짐 싣는 판을 딛고 서서 구경하는 사람, 맞은편 담 위에 나란히 걸터앉은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은 어디 더 잘 보일 만한 장소가 없나 이리저리 어른들 틈새로 몰려 다니고 있었다. 국원이와 나는 쌍성루 옥상을 생각해내고 목재소 뒷담에 기어오르면 쌍성루 옥상으로 오르는 쇠사다리에 닿는다는 걸 생각해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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