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 아메리칸 드림 일군 환상의 '은반 커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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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러시아 망명자와 아메리칸 인디언-.미국 내 두 비주류 남녀가 인고의 세월 끝에 마침내 미국 대표선수의 꿈을 이뤘다.

13일(한국시간) LA에서 열린 전미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아이스댄싱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피터 체르니셰프(31)와 나오미 랭(24). 어느 대회 어느 선수의 우승 메달에 애틋한 사연이 없을까만 이들이 이번에 일궈낸 우승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체르니셰프는 소련 시절 피겨스케이팅 선수권을 4연패한 할아버지의 핏줄을 이어받아 어릴 적부터 스케이트화를 신었고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소련 붕괴 후 훈련비 지원이 끊기면서 그는 1992년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이번이 대회 네번째 우승일 정도로 기량은 최정상급이었지만 미국 국적을 얻지 못해 올림픽 출전자 대상에서는 항상 제외됐다.

지난해 1월 꿈에 그리던 시민권을 획득한 체르니셰프는 이날 우승으로 마침내 10년의 꿈을 이루게 됐다. 그는 "올림픽 출전을 위해 참으로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면서 "기회를 준 미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열일곱살 되던 때부터 체르니셰프와 호흡을 맞춰온 파트너 랭 역시 이날 우승으로 최초의 인디언 출신 겨울올림픽 출전선수라는 수식어를 달게 됐다. 북부 캘리포니아주 인디언 카루크족 출신인 랭은 어릴 적부터 부족의 문화와 전통춤으로 아이스댄싱의 기본기를 닦은 덕분에 예술 연기가 독특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한편 미국의 미셸 콴은 피겨 여자싱글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해 대회 5연패와 함께 통산 여섯번째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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