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대학출판부는 다 어디 숨었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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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명 대학들이 세계 순위에서 크게 밀려났다는 소식이나 사학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출판 담당으로서 대학 출판부의 위상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 대학의 출판부는 아직 유아 단계에 있는 게 확실합니다.

지금 각국의 대학 출판부는 자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첨병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들릴지 모르지만 영국과 미국 대학 출판부의 경쟁을 보면 대학 출판부의 역할은 분명해집니다.
우리 나라와 미국의 관계는 좀 특별하지요. 그러다보니 미국의 문화가 더 빨리 전파됩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마 영어 학원에서 ‘미식(美式)회화’라는 표현을 자주 접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적어도 출판계에서만은 영국식 영어가 우세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식 영어회회의 물줄기를 영국식으로 바꿔 놓은 것은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의 노력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가 연간 내놓는 신간의 종수가 얼마인지 짐작이 되십니까. 자그마치 4500종이나 됩니다. 그리고 전세계에서 이 대학 출판부를 위해 활동하는 종사자는 3700명이랍니다. 이 대학의 출판물은 일반 독자들을 상대로 한 것이 많습니다. 심지어 어린이책까지 출간하고, 그 어린이책은 우리 나라에서도 경쟁적으로 번역 출간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는 한 교수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 편집자가 6개월 동안 그 교수의 강의를 듣는다는 대목에선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 대학생을 위한 교재더라도 완성도가 조금이라도 더 높은 책을 내놓겠다는 욕심이지요.

지식과 정보를 생산해 유통시키고 저장하는 것을 대학의 기능으로 볼 때 출판이야말로 그 세 가지가 모두 어우러진 결정체 아닙니까. 그런데 한국대학출판부협회에 가입한 대학 출판부는 80여개에 지나지 않고, 직원도 평균 4명이 채 안 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대학 출판부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전문성을 인정해주는 풍토도 절실한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일부 대학 출판부가 최근 독립 브랜드를 내세우거나 디자인의 고급화, 기획 출판 등을 통해 일반 독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다행입니다만 그것도 다른 선진 국가들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정명진 기자 Book Review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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