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외면하는 중국에 분노할 것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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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우화집에서 읽은 얘기다. 길 가던 사람이 주인과 카드 놀이 하는 개를 봤다. 깜짝 놀라 “참 영리한 개일세”라고 칭찬했다. 그러자 주인이 시큰둥하게 받았다. “그렇지도 않아요. 좋은 패를 잡으면 막 꼬리를 흔들거든요.”

원자바오 총리가 한국에 와서도 우리 말을 여전히 믿지 못하겠단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해 입장을 결정하겠다”고 한다. 말이야 그럴 듯하다. 자신들의 혈맹인 북한도 감싸지 않겠다니 말이다. 김정일이 후진타오 주석에게 직접 결백을 주장했다는데,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더욱 그렇다. 남북한 주장이 서로 다르니 자신들이 공정한 심판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로선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어뢰 잔해, 그 이상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증거가 어디 있는가. 하지만 정말로 화가 나는 건 우리 신세다. 패를 쥐고 꼬리 치는 개 신세로 전락해서다. 중국은 그런 우리를 들여다보고 유유히 카드놀이를 하는 주인 신세다. 이런 구조에서는 중국이 승자일 수밖에 없다. 좋은 패만 들어오면 마냥 꼬리를 흔드는 우리가 이길 순 없다. 그러니 중국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중국이 변했니, 아니니를 따지는 신세 말이다. 다 우리가 못난 탓이다.

따지고 보면 중국 나무랄 것 하나도 없다. 중국이 얄팍한 잇속 계산만 하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이 강대국이 아니라고 비난한다면 그게 잘못됐다. 적어도 공정한 비난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을 포함한 모든 강대국들이 다 그렇다. 평소엔 보편적 가치를 주창하지만 국익에 손상이 된다 싶으면 폭력도 불사하는 게 강대국들이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진실을 외면하고, 심지어 거짓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세계의 이익을 위한 강대국의 책임 따위는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 법이라면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중국이 변할 것이라는 어느 중국 학자의 주장에 솔깃해선 안 된다. 공정한 심판 운운하는 원자바오 총리의 말 역시 단지 정치적 수사로 받아들이는 게 옳다. 중국을 움직이는 건 자신들의 국익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중국 태도가 바뀐다면 이는 증거가 명확해져서도, 우리를 좋아해서도 아니다.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국익에 손해가 되지 않는다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혈맹이란 찬사가 나올 정도로 우리 편을 열심히 들어주는 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그게 자신의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 경수로 지원 당시 생색은 자신들이 내고 돈은 우리가 부담하도록 했던 전례도 있다. 이번 사태로 미국은 많은 걸 얻을 수 있게 됐다.

안보상 이익이 더 크겠지만 경제적 이익도 상당할 것이다. 당장 미국은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할 찬스를 잡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상당부분 잃었던 그 영향력 말이다. 지난 3월 출범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다자화체제가 그 증거다. 1997년 경제위기를 맞았던 아시아의 숙원사업이었다. 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집단적 자구장치만 있었더라면 미국 달러와 IMF한테 초주검을 당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동체 결성 움직임은 매번 좌절됐다. 미국의 반대 탓이 컸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니었다면 이번 CMI 다자화체제도 태동하기 쉽지 않았을 게다.

우리는 강대국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샌드위치 신세다. 이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영악해지는 길뿐이다. 그들처럼 국익을 최우선시해야 한다. 중국이 밉다고 적으로 돌리고, 미국이 고맙다고 혈맹으로 생각하는 순진한 자세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친미(親美)반중(反中)이라는 냉전시대의 유물을 꺼내들어서도 안 된다. 용미(用美)용중(用中)해야 한다. 때로는 미국을 활용해 중국을 견제하고, 때로는 중국과 협력해 미국의 압력을 막아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동시에, 중국과 동아시아공동체를 결성해야 하는 이유다. 이런 우리의 생존전략이 천안함 사태로 허물어져선 안 된다.

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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