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빌어먹을 원유구멍’ 못 막는 인간기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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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호 02면

미국 멕시코만 해저에 뚫은 유정 하나가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 지난달 20일 석유시추시설 ‘딥워터 호라이즌’ 폭발 사고가 난 뒤 이달 27일까지 7200만L에서 최대 1억4800만L의 원유가 유출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7년 태안 앞바다에 쏟아진 기름이 1240만L 정도였으니 이번 사고의 피해가 얼마나 클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급기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도 “빌어먹을 (원유 유출) 구멍 좀 막아 버려”라는 상소리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딥워터 호라이즌을 임차해 사용해온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이 ‘톱 킬(Top Kill)’이라는 방식으로 원유 유출을 막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원유 유출방지기 내 일부 관에 점토 성분이 높은 흙탕물인 이수(泥水) 등 액체 유동액을 고압으로 투사해 유출을 억제한 뒤 시멘트를 부어 유전 구멍을 막는 작업이다. 이런 일은 로봇들이 수행한다. 해저 1500m의 깊은 바다에서 시도되는 고난도 작업이라 성공여부가 불확실하다. 이 작업이 실패할 경우 유정의 분출 압력을 낮출 감압유정을 뚫게 될 8월까지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피해 지역이 다음 달부터 6개월간 허리케인 시즌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더구나 올해는 예년보다 많은 허리케인이 닥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 해양대기청은 허리케인이나 연쇄적인 열대성 폭풍이 발생할 경우 멕시코만 해저에서 새고 있는 원유가 해상으로 더 많이 올라오는 것은 물론 해안 쪽으로 대거 밀려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부 전문가는 기름띠가 남쪽으로 흘러 멕시코 만류를 타고 대서양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번 기름 유출 사태의 최초 피해자는 루이지애나의 어부들이다. 이들은 석유시추시설 폭발 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미시시피강이 만들어낸 천혜의 삼각주 습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풍요롭던 어장은 하루아침에 흑갈색 기름 덩어리로 뒤덮였고, 죽은 물고기만 배를 허옇게 드러낸 채 떠다니고 있다.

이들의 안타까운 처지는 남의 일이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피해 지역은 확산되고 피해자도 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지구촌 모든 사람이 이번 사고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태 수습 과정에서 우리는 바로 우리 모두가 루이지애나의 어부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번 사고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인간의 부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조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원유유출 사고는 한두 번이 아닌데 이렇게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가, 하는 한숨이 나온다. 자연 앞에서 겸손한 기술이 필요하다. 인간이 개발한 기술이 재앙이 되어 돌아오지 않도록 ‘재앙예방 기술’에 예민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뒤 원전사고 예방기술이 발전했다. 무한시장 경쟁에서 이기는 돈 되는 기술뿐 아니라 인류의 재앙을 막아내는 이타적 기술에 눈을 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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