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11일 '시네마 천국'서 장르 만남 해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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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분필이 총알처럼 허공을 가르고, 주인공이 날린 차 이파리가 용의 형상을 그리며 움직인다. 적과 마주한 소년의 손끝에서 섬광과 함께 광풍이 발산되고, 그가 몸을 날리는 순간 온 천지가 진동한다. (김태균 감독의 '화산고' 중)

최근 국내외 영화에서 무협만화나 코믹.순정만화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만화적 감수성과 상상력이 영화 속으로 급속히 밀려 들고 있는 것이다.

EBS '시네마 천국'은 11일 밤 10시50분 영화와 만화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최근의 경향을 집중 조명한다. 예를 들어 순정 영화를 표방한 김용균 감독의 '와니와 준하'(사진). 실사(實寫)를 바탕으로 구현된 애니메이션이 영화 속에 아예 삽입됐다.

스케치북 위로 번져 나간 붓질의 온기가 스크린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6분 30초 분량의 애니메이션이 총 1백 14분짜리 영화 전체를 더없이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평이다.

이외에도 '소림족구''매트릭스''신라의 달밤''인정사정 볼 것 없다''반칙왕' 등 각종 영화에서도 만화 특유의 표현 기법이 장면 곳곳에 녹아 있다. 피가 물줄기같이 뿜어 오르거나 화면이 수시로 분할되고, 시간의 흐름이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는 식의 표현 등이다.

그렇다면 최근 영화들이 적극적으로 만화의 기법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뭘까. 제작진은 우선 만화 특유의 과장과 함축, 팬터지가 요즘 영화의 경향과 맞아떨어진다는 점을 들고 있다. 만화에서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환상과 현실이 공존할 수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제작진은 영화의 주 소비층인 10~30대가 만화에 친숙한 세대라는 점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1992년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 아트 슈피겔만은 "만화는 연극보다 유연하고 영화보다 심오하다"고 말했다.

예술 장르로서의 만화의 가능성을 크게 평가한 것이다.

만화의 끝없는 상상력은, 앞으로도 영화란 수레바퀴에 더 큰 탄력을 불어 넣어줄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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