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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View/김영철의 차 그리고 사람] 그 귀한 고종황제의 어차, 지프 엔진을 달아달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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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회장이 닷지 코로넷(1950)의 보닛에 앉아있다. 이 차는 김 회장이 국민대학교에 기증했다.

17세기 프랑스 귀족은 여름 휴가나 주말에 애용하는 마차(馬車·coach, carriage)를 파리의 공원으로 몰고 갔다. 공원 안을 돌아다니며 마차의 위용을 뽐내기 위해서였다. 이 마차의 행렬은 훗날 콩쿠르 델레강스(Concours d’Elegance)라는 명칭을 얻게 돼 전통 있는 행사로 발전했다. 콩쿠르 델레강스는 프랑스어로 ‘우아함의 경쟁’이란 뜻이다. 이 말의 의미처럼 콩쿠르는 마차의 우아함을 경쟁시킨 뒤 가장 멋진 마차를 골라 상을 줬다.

이 전통은 지금도 미국과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마차가 아닌 자동차가 대신해서 명칭도 ‘클래식 카 콩쿠르 델레강스(classic car Concours d’Elegance)’라고 바뀌었지만 큰 도시에선 큰 규모로, 작은 도시에선 작게 콩쿠르가 행해지고 있다. 골동품이 다 된 옛날 차이지만 지금도 잘 굴러가는 귀한 차, 몇 대밖에 생산되지 않은 희귀한 차, 오랫동안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차가 집결한다.

이런 행사는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까다로운 심사와 평가를 통과한 차만 선정된다. 주로 원형이 제대로 보존돼 있는지, 복원된 차라면 제작됐을 당시의 규격에 맞추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역사적 가치가 있는 귀한 차인지 등을 심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콩쿠르 참가자는 대부분 자동차에 관한 열정과 취미가 남다르다. 재정적으로도 여유가 있어 자동차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일단 출품해서 ‘우아한 자동차’로 선정되면 그 차의 가치가 올라간다. 더 중요한 것은 자동차가 받을 수 있는 최상의 명예를 얻게 된다는 점이다.

얼마 전 일본에서 두 번씩이나 ‘콩쿠르 델레강스’를 주최한 사람이 국내에서도 이런 콩쿠르가 가능한지 자문했다. 그는 “한국엔 클래식 카가 없기 때문에 전시할 차는 전부 다 외국에서부터 수송해야 한다”며 어느 대기업 회장이 몇 대의 차를 소장하고 있고, 자동차 박물관도 단 한 개가 있는 사실을 안다고 했다. 국내에 클래식 카가 없으니 외국인의 차를 수송해와 전시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왠지 씁쓸하게 들렸다. 외국엔 옛날 차를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의 큰 도시엔 자동차 박물관이 한두 개씩은 다 있다.

그런데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인 우리나라엔 제주도에 새로 생긴 박물관을 포함해 둘밖에 없다는 것이 못내 부끄러웠다. 물론 그동안 먹고살기에도 바빴고 또 타고 다닐 차도 없었는데 무슨 클래식 카를 소장할 여유가 있었겠는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래도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도 있지 않은가. 자동차 박물관이 누구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동차의 역사를 알면 자동차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자동차를 이해한다면 자동차 문화를 더 긍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자동차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 뚱땅 뚱땅 두드려 차만 만든다면 과연 명품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생길 수 있다.

나는 그에게 한국에서 ‘클래식 카 콩쿠르 델레강스’를 개최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옛날 것에 대한 사람들의 미련과 낭만이 있어야 그런 행사가 성공할 텐데 한국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미련은 그렇다 해도 옛 자동차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도로에서 현대 포니, 코티나 등 초창기에 생산된 차를 찾아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다. 차와 사람의 ‘추억’이 사라진 셈이다.

오래 전 부친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1950년대 자동차 정비 공장을 하던 부친 회사에 고종 황제의 차에 지프 차 엔진을 달아줄 수 있는가 하는 문의가 왔었단다. 문화재 관리국이 아니라 창경원에서의 문의였다. 어차(御車·다임러 1907년과 캐딜락 1903년)가 움직일 수만 있다면 돈을 받고 관광객을 태워주려 한다는 것이었다. 부친은 “그 귀한 차에 지프 차 엔진이 웬 말이냐”고 그냥 달래서 돌려보냈다고 한다.

나는 1950년 닷지 코로넷을 30여 년간 갖고 있었다. 지난해 국민대에 이 차를 자동차학과 학생의 연구용으로 사용하라고 기증했다. 1년에 한두 번밖에 도로에 나갈 기회가 없는 차였지만 매년 정기검사를 받아야 했다. 50년대 차에는 안전벨트라는 것이 없었지만 검사 받을 땐 안전벨트를 테이프로 붙여서라도 보여주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또 엔진은 일자형 8기통이고 구식 카뷰레터가 휘발유를 기화시키는 방식이라서 요즘 배기가스 배출 기준에 맞출 수가 없었다. 검사 때만 하수구처럼 파이프와 머플러를 여기저기에 장착해 억지로 통과 수치를 만들곤 했다. 코미디 같은 일이었다.

외국의 경우엔 자동차가 생산된 당시의 기준으로 검사를 받는다. 1930년에 만들어진 차는 그때 기준에 따라 검사를 받으면 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 단기용 번호판도 발급해주기 때문에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선 오래된 차는 폐차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동차 산업이 아무리 성장한다 해도 자동차 문화가 함께 발전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명품 차를 개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가야미디어 회장 김영철 (에스콰이어·바자·모터트렌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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