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다이내믹 코리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외환 위기 이후 4년이 지나면서 한국 경제의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그동안 정부가 주축이 된 기업구조조정도 진행됐으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구조조정은 시장에 의해 이뤄졌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사라지고 새로운 기업들이 경제의 주역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우리 경제는 더 다양해지고 역동적이 됐다.

*** 기업의 판도 대변화 실감

기업의 신규진입과 퇴출에 의해 연출된 한국 경제의 주역 변화는 크게 세 가지의 추세로 집약된다.

과거에는 한국 경제 하면 대기업집단, 또는 재벌이라는 등식이 성립했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이후 20년간에는 재벌의 면면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96년 이후 재벌의 판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 해 말부터 시작해 3년간 30대 기업집단 중에서 절반이 넘는 수가 부도 내지 파산의 위기에 몰렸으며, 그 중에는 5대 그룹에 속하는 기업도 포함됐다.

그 가운데 중요한 추세는 중견그룹의 상대적 쇠퇴와 그룹별 성과의 뚜렷한 차별화였다. 하위 26개 집단이 증권거래소의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7년에 27%로 피크에 달한 이후 계속 하락해 지금은 10~12%로 줄어든 반면, 상위 4대 그룹의 비중은 90년대 초의 17%대에 비해 지난 2년간은 40%대로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은 삼성전자나 SK텔레콤과 같은 초우량기업의 존재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국제경쟁력이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뚜렷이 차별화됐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때문에 수 많은 기업이 도산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신규창업이 지난 몇 년간에 있었다. 99~2000년의 벤처 붐은 진정되고 이제 벤처기업 중에서 옥석이 가려지고 있으나, 신규창업의 열기는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7대 도시에서의 부도법인 수에 대비한 신설법인 수는 93~97년의 기간에는 대체로 3~4배수의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99년에는 이 배수가 12로, 2000년에는 15로, 그리고 지난해 10월까지는 17로 증가했다.

그러니까 지난해 첫 10개월간 약 2천개의 법인이 부도가 난 반면에 3만3천개의 법인이 새로 설립된 것이다. 이러한 창업의 열기는 대기업 쪽에서 퇴출된 인력과 자본이 있었고 또한 대기업이 과거에 제시했던 안정된 직장의 신화가 깨졌기 때문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창업하기가 더 용이해졌고 또한 사업 기회도 많아졌다는 긍정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신규창업이 활발한 것은 우리 경제의 장기적인 전망을 밝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시장변화의 셋째 추세는 외자계 기업의 국내시장에의 적극적 진출이다. 최근의 유엔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의 우리나라 외국인투자 누적액은 95년 말의 5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외자계 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몇 년간 서너 배 증가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 기업의 진입은 새로운 기술과 노하우의 도입 및 경쟁 촉진 등의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와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촉진시킬 것이다.

일각에서는 우리 경제의 대외 종속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으나, 우리 경제에서 외자계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들의 평균치에 비해 낮기 때문에 이는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다.

*** 차별적 규제·지원 없애야

종합하건대 지난 5년간 우리 경제의 다이내믹한 변화는 극소수의 세계적 기업의 급성장, 경쟁력 없는 중견 재벌의 몰락, 엄청난 신규창업의 열기, 그리고 외자계 기업의 약진 등으로 집약된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경제가 훨씬 더 다양화하고 균형된 구조를 갖게 되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러한 시장기능의 작동을 감안해 볼 때, 이제 정부는 특정 기업군에 대한 차별적 규제나 지원을 없애고 그 대신 금융시장과 노동시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는 쪽으로 정책의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기업이 잘 돼야 경제가 살아나며, 기업이 잘 되려면 정부가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의 소유구조, 재무구조, 다각화전략 및 경영구조 모두 시장에 맡기면 되지 정부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정구현 연세대 교수 경영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